다른 나라의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신파’라고 언급할 것이다. 한국영화의 뼈대를 구성하는 시나리오 작가들은 신파라는 레시피를 즐겨 사용한다. ‘7번방의 선물’이나 ‘하모니’ 같은 영화는 관객의 손수건을 적시려고 작정한 직접적인 ‘신파’ 영화다. 반면 ‘박수건달’ 같은 코미디 영화는 간접적인 신파영화에 포함된다.

한국영화에는 장르와는 상관없이 신파라는 조미료가 뿌려지기 일쑤다. 많은 수의 한국영화가 신파라는 MSG에 남용되고 마는 ‘신파 강박증’, ‘감동 강박증’에 경도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이미지

오늘 다룰 ‘시간위의 집’도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라는 감성에 경도된 공포영화다. 보통 영화라면 나중에 전개될 만한 장면이 이 영화에는 맨 처음에 제시된다. 주인공 미희(김윤진 분)의 남편은 배에 칼이 꽂힌 채 죽어가고, 아들은 알 수 없는 어둠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컬트에 문외한인 관객이라 해도 아들이 사라진 것이 인간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는 첫 시퀀스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가는 오컬트적인 요소에 신파라는 레시피, 엄밀히 표현하면 가족애와 결합한 신파라는 레시피를 첨가해 공포에 가족애를 가미한 신파영화를 구성한다. 어둠의 공간에 빨려들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들의 행방을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25년 동안 한시도 잊지 않은 미희의 모성애. 이 모성애와 호러 요소의 만남이 극적이었다면 ‘식스 센스’와 같은 짜임새가 갖춰졌겠지만, 불행히도 영화는 호러와 가족애를 곁들인 신파의 만남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다. 기존 공포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라는 소재도 참신하게 도입했지만 관객으로선 탄복하기보다는 아쉬워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이미지

공포 장르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잽’보다는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결정적인 한 방이 중요하다. ‘컨저링’ 같은 공포영화가 이 같은 사례에 속한다. 한데 ‘시간위의 집’은 공포영화의 핵심인 결정적인 한 방의 부재는 물론이고,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잽도 그다지 위력적이지 못하다. 다른 공포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초자연적 존재에 깜짝 놀라는 정도 이다.

미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최 신부(옥택연 분)가 미희의 사연에 적극 공감하고 미희를 도와주고자 하는 설정은 여타 영화에서 주인공의 주변인이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는 설정과 언뜻 닮아 보인다. 하지만 최 신부가 미희를 도와주는 설정은 이런 조력자의 수순을 넘어서 이 영화의 후반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점에서 미덕으로 꼽을 만하다.

영화 <시간위의 집> 스틸 이미지

하지만 최 신부가 미희를 위해 민간인의 신분으로 경찰서 안에서 미희를 돕기 위해 이전 사료를 뒤지는 설정은, 권상우 주연의 영화 ‘탐정: 더 비기닝’에서 얼치기 탐정 권상우가 민간인 신분으로 형사와 손을 맺고 합동 수사를 펼친다는 ‘판타지’와 일맥상통하다. 결론적으로 ‘시간위의 집’은 공포에 가족애와 신파 모두를 담으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비빔밥으로 전락하고 만 듯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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