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박근혜 사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언론이 판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안철수 전 대표는 경기 하남 신장시장을 방문한 후 기자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는 "대통령에 당선되신다면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물었고, 안 전 대표는 "대통령이 사면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 뜻을 모아 투명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기자가 "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사면위원회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말씀이냐"고 재차 묻자, 안 전 대표는 "국민의 요구가 있으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답변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이같은 안철수 전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는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문재인 캠프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안 전 대표가 아직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가능성을 언급해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고 제기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민 요구가 있으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사면에 방점을 둔 게 아닌지 묻고 싶다"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요구해야 사면해 줄 수 있다는 건지, 아직 수사도 안 끝난 상황에서 사면을 언급하는 게 적절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안철수 전 대표 측은 "문재인 전 대표 측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대세론이 무너져 초조한가"라면서 "지금 사면위원회가 유명무실한데 그것을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론을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구속되자마자 사면이니 용서니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재차 공격의 고삐를 당겼다.

사실 안철수 전 대표 입장에서는 관련 발언과 해명을 따져봤을 때 억울한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대선행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자의 질문에 원론적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적지 않다. 지난달 16일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사면심사위원회라는 독립적 기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발언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박근혜 사면' 논란으로 확대·왜곡됐다. 일부 언론은 안 전 대표의 발언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사의 '박근혜 용서 발언'과 함께 묶어 보도했고, 안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론을 주장했다는 보도까지 등장했다.

▲2일자 채널A 보도. (사진=채널A 보도화면 캡처)

채널A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31일 채널A는 "정치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냈다"면서 "강경한 후보는 '절대 사면은 안 된다'고 벌써부터 선을 그었고, 반대쪽 후보는 '이제는 용서하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불가 방침을 전한 뒤, "안철수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가치가 실현된 것'이라면서도 사면에 대해서는 국민 요구를 우선적으로 언급했다"면서 안 전 대표의 '국민 요구가 있으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는 발언을 강조했다.

이어 홍준표 지사의 발언, "이제는 박 전 대통령을 용서하자"를 바로 뒤에 배치했다. 단순히 대선후보들의 발언을 기계적으로 보도한 것 같지만, 배열상 보기에 따라 안철수 전 대표와 홍 지사의 의견이 비슷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채널A는 안철수 전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했다고 단정지어 보도하기도 했다. 채널A는 2일 <'사면론 거론' 안철수 향해 좌우 협공> 리포트에서 박근혜 사면 논란에 대해 "논란은 안철수 전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면서 "사면 여지를 열어놓는 듯한 안 전 대표의 발언에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정의당까지 총공세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안 전 대표가 '언론이 판 함정'에 빠진 것이다.

▲3일자 경향신문 사설.

일각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지 못한 게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자 경향신문은 <억울하다는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자는 자는 누구인가> 사설에서 경향신문은 "국정을 농단해 탄핵되고 구속된 지금까지도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며 억울하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면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라면서 "추운 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시민들로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안철수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딱 자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일부 보수층을 잡고자 하는 심정이 반영된 발언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그런데도 안 후보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상대방이 비난하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면서 "국민의당은 '색깔론을 씌운다'는 황당한 항변을 늘어놓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3일자 한겨레 사설.

같은 날 한겨레는 박근혜 사면 논란이 불거진 이유가 조기대선에서 표와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겨레는 <벌써 '박근혜 사면' 논란 벌이는 정치권> 사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정치권에서 벌써 그의 사면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 사면 문제를 접근한다면 국민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안철수 전 대표의 발언 전문을 소개하며 "듣기에 따라선 '국민 요구가 있으면 사면위원회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면서 "안 전 대표가 말한 '국민 요구'라는 기준이 결국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합리화하는 장치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지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논란이 커진 건, 사면 문제가 5월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와 연결돼 있다고 모든 정치세력이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정략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국민이니 통합이니 하는 좋은 말로 사면의 여지를 열어두려는 건 옳지 않을뿐더러 국민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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