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을 일으켰던 <무한도전> 뉴욕 식객편이 끝났다. 한 주간의 논란을 웃음으로 정리하는 그 ‘쿨’함에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찬탄이 터졌던 마무리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특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양쉐프라는 캐릭터였다.

난 요리사 양지훈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무한도전> 밖에서 그가 어떤 언행을 보이는 지도 알지 못한다. 그의 실체가 어떠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무한도전> 속에서 그가 보여준 양쉐프라는 캐릭터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양쉐프 캐릭터의 매력은 묘한 인간미, 최선을 다 하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카리스마, 그리고 리더십에 있었다. 특히 팀의 사기를 북돋우는 리더십의 매력이 마침 정준하의 고집으로 촉발된 상대팀의 내분과 대비되어 선명히 드러났다. 정준하가 양쉐프 캐릭터를 살렸다고나 할까?

양쉐프는 팀원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불쾌하거나, 무안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또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도 팀원들이 여유를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하지만 지적할 것은 정확히 지적하며, 동시에 팀원의 안전을 분명히 챙기는 훌륭한 지도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 무한도전 화면 캡쳐

우리 사회는 요즘 ‘과연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어떤 것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있다. 미실과 덕만의 리더십 대결이 열렬한 호응을 얻은 것은 그런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봤을 때 이번 <무한도전>은 양쉐프 캐릭터를 통해 또 하나의 바람직한 리더십 형태를 제시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양쉐프와 박명수가 처음으로 부딪혔을 때 양쉐프 리더십의 특징이 드러났다. 박명수는 고기를 다지던 칼과 도마를 씻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해 야채를 썰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고 양쉐프는 그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러지 마라. 칼을 씻어라. 고기와 야채를 구분하라’라는 식으로 명령이나 지침만을 내린 게 아니었다. 그냥 넘어가자고 반말로 얘기하는 박명수에게 잘못 처리된 야채를 버린 후 더 빨리 다지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며 자연스럽게 설득했다. 이렇게 되면 야채를 버리는 것이 일이 더욱 잘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박명수의 잘못 자체가 큰 사건이 아닌 단순한 시행착오가 되어 자존심이 상할 일이 없게 된다.

또 그는 박명수의 방식으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효율성의 문제로 설득하고, 세균과 안전의 문제를 설명해서 최종적으로 쐐기를 박았다.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팀원이 자기도 모르게 설득되도록 한 것이다. <무한도전>을 본 이는 이런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렇게 이해와 동의에 의해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훌륭한 리더십이다. 또 일처리가 더 잘 되도록 하는 것은 결국 박명수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내 생각이 옳으니 내 생각을 따라라’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다’라고 모두의 공동선을 내세우는 것도 훌륭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쉐프는 또 팀원에게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이 발견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면 팀원의 사기가 올라가면서, 팀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동시에 팀원의 잠재력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뉴욕 식객 1편에서 정준하의 좌절과 극적으로 대비된 길의 부각이 칭찬 리더십의 마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뉴욕 식객 2편에서 길에게 더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장면에서도 양쉐프 리더십의 특징이 잘 나타났다. 그는 허둥대는 팀원에게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며, 안전관리에 철저할 것을 당부했었다. 이렇게 화급한 순간일수록 리더가 여유를 보여줘 팀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는 자신이 속이 다 타도록 초조하더라도 팀원에게는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평을 듣는 청나라의 강희제는 내란을 토벌하면서 불리한 전세에서도 결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하들이 불안에 빠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만 부리다가 일을 그르친다면 차라리 팀원을 닦달하는 것만 못한 일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여유를 갖게 하면서도 동시에 팀원을 다그치는 마법을 발휘해야 한다. 바로 양쉐프가 길을 재촉하는 장면이 그랬다. 그는 길에게 시간이 없으니 일을 더 빨리 하라고 하지 않았다.

‘길씨는 잘 하니까 좀 속도를 내주세요. 이렇게 잘 자르는데 천천할 할 필요 없잖아요.’

칭찬과 재촉의 절묘한 조합이다. 노홍철에게 접시를 치운 다음 통을 가져다 놓고 썰라고 지적할 때에도, ‘접시도 좋은데’라고 칭찬하는 것을 잃지 않았다. 칭찬을 통해 팀원의 사기를 올리면서 생산성도 향상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 무한도전 화면 캡쳐

자신이 팀원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 팀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면서, 그렇다고 마냥 풀어줘서 오합지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질서도 분명히 잡아나갔다. 그리하여 요리작업이 침착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뉴욕 식객편을 보며 이런 양쉐프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식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대할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사기를 북돋워주며 장점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키워야 아이들의 잠재력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오로지 시험성적을 올리라고 아이들을 다그칠 뿐이다. 이건 최악의 리더십이다. 성인이 되면 냉혹한 구조조정과 성과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을 북돋워주는 방식이 아니라 다그치고 냉정하게 쳐버리는 방식의 리더십만 횡행하는 느낌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따뜻한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양쉐프 캐릭터가 그런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무한도전>에선 타이거JK가 양쉐프와 같은 리더십을 보여줬었다. 타이거JK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양쉐프에게도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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