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에 앞서 어릴 적 극장에서 대형 영화를 볼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씨네마스코프'의 로고를 오랜만에 접하는 순간, 이 영화 범상치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다가왔다.

왜 씨네마스코프를 사용해서 영화를 찍었을까에 대한 의문의 해답은 첫 장면부터 쉽게 풀렸다. 꽉 막힌 LA의 도로에서 차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올드 스타일의 차부터 최신식 차까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들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무료함과 짜증을 달래려 한다.

그 가운데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한 여성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가사를 읊조린다. 그리고 꽉 막힌 도로에서 흥겹게 몸을 흔들어댄다. 그 순간 LA도로는 거대한 뮤지컬 무대로 바뀐다. 카메라는 쉬지 않고 그들을 담아낸다. 약속된 움직임과 절묘한 장면 전환 등이 순식간에 스크린에 몰입을 유도한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저마다의 꿈을 찾아 LA에 찾아온 이들의 여정이 시작됨을 알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흥겨운 쇼를 마치고 차로 돌아간다. 동시에 자막이 뜬다. '라라랜드'

영화 로고의 서체를 보면 이 영화의 배경이 현재인지 아니면 1950년대인지 쉽게 분간이 가지 않는다.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헐리우드의 배경이 더욱 영화의 배경을 쉽게 분간하지 못하게 만든다. 분명히 배경은 현재가 맞는데 무대는 마치 1950년대와 같은 아이러니함은 아마도 1950년대나 지금이나 LA, 헐리우드, 라라랜드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늘 어우러져 있음을 역설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시대배경을 분간하기 어려운 장치는 질펀한 재즈음악과 함께 영화의 감흥을 높여준다. 잘 짜여진 배경 속에 배우들의 멋진 연기는 라라랜드에 대한 좋은 기억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특히 여주인공 엠마 스톤은 물을 만난 고기마냥 익살스러움, 절망, 앙증맞음, 행복 등의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면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남주인공 라이언 고슬링의 우수 어린 듯한 눈빛과 재즈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도 큰 매력을 선사한다.

무대, 배우와 더불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은 주옥같은 OST이다. 이미 전작 '위플래시'에서 음악에 대한 일가견을 드러낸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라라랜드'에서 자신의 음악적 소양을 더욱 완성도를 높여 드러낸다.

주인공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포기 직전에 이르다가 결국 자신의 꿈을 쟁취하게 된다. 누구나 다 우러러보고 싶을 정도의 성공을 이뤄낸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전개를 보이던 영화는 결말엔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남주의 마음속에 늘 담아 두었던 생각들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어우러져 펼쳐지는 순간 아쉬움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두 사람이 재즈바에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면은 감독의 전작 '위플래시'의 하이라이트 장면의 전개와 유사하다. 자신을 혹독하게 내몬 선생에 대해 자신의 연주실력으로 통쾌하게 복수하는 주인공과 자신의 제자를 비로소 인정하는 선생이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교환하는 장면에서 처절하게 평행선을 치닫던 그들의 긴장감이 해빙을 맛보듯 녹아내린다.

반면 '라라랜드'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주인공이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교환하는 장면에서는 이제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묻어두고 서로의 현실로 돌아가게 됨을 암시한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두 주인공의 눈빛 교환으로 영화 갈등의 해결을 대사 없이 풀어내는 묘한 재주가 있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옛사랑을 떠나보낸 남자 주인공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연주를 위해 '하나 둘 셋'을 되뇌는 장면은 역설적인 슬픔을 선사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라이언 고슬링의 우수어린 눈빛이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벌써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필자의 이어폰에서는 늘 '라라랜드'의 OST가 흘러나온다.

영화의 감동을 더욱 증폭시켜 주는 OST, 아름다운 무대, 의상, 주연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맞물린 영화 '라라랜드'는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 최고의 해프닝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해프닝이 아닐지라도 최고의 영화로 찬사 받을 자격이 충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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