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의 문제점이 불거지자 바른정당·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적 대응책을 마련한다며 공직선거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개정안이 오히려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수사기관과 선거관리위원회에 유례없이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3일 바른정당 장제원 의원 등 10명은 ‘가짜 뉴스’에 대한 법적 대응책으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제272조의2 제2항에서 디지털 기기 및 무형의 디지털 자료·정보를 ‘디지털 증거자료’라고 정의하면서 선관위 위원·직원이 현장 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증거물품은 ‘선거 범죄에 사용된 것’만 현장 수거할 수 있도록 한 기존 법안의 요건을 완화 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개정안 제272조의3의 조항들은 정보통신망 또는 전화 등을 이용한 사이버 선거범죄의 경우, 법원의 승인 등 아무런 요건 없이 디지털 증거자료를 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개정안은 디지털 증거자료를 소유·관리하고 있는 자가 이 같은 조치에 협조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으며 자료를 조작·파괴·은닉하거나 이를 지시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장 의원이 대표로 발의했으며, 바른정당 김세연·박성중·홍철호·정병국·하태경 의원과 자유한국당 김현아·이양수·정우택·조훈현 의원 등 총 9명이 동참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27일 논평을 내고 이 개정안에 대해 “가짜 뉴스 대응을 빙자해 선관위가 통신의 내용을 포함한 디지털 증거를 아무런 제한 없이 수거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 가짜 뉴스를 오히려 확산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황당한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디지털 증거자료’에는 디지털 기기뿐만 아니라 무형의 자료와 개인정보까지 포함돼 범죄 관련 정보와 무관한 정보가 혼재 돼 있어, 어느 부분이 증거가 될지는 미리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도 디지털 증거를 압수·수색할 때는 범죄와의 관련성을 밝혀 정보의 범위와 압수 기간을 특정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오픈넷은 “이번 개정안은 수사기관보다 선관위에게 막강한 조사 권한을 무한대로 부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법원의 승인 없이 단순 신원정보뿐만 아니라 통신의 내용까지 디지털 증거자료를 수거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에 대해 “영장주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며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고, 선관위 수거에 협조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포털과 SNS 사업자 등 정보매개자들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고 선관위의 요청에 무조건 응하는 행태를 보일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디지털 증거자료를 조작·파괴·은닉하거나 이를 지시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개정안의 내용은 ‘가짜 뉴스 억제’라는 입법목적과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가짜 뉴스’를 올린 사람이 추후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수정한 경우에도 조작·파괴·은닉죄로 징역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생겼고, 또 게시판 운영자나 게시물의 저자가 게시물을 수정·삭제를 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안은 '가짜 뉴스'를 자정하겠다는 움직임마저 틀어막아, 오히려 가짜 뉴스 유포를 확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오픈넷은 “결국 가짜 뉴스를 대응한다며 만든 법이 ‘가짜 뉴스 유지’를 조장하는 꼴이 돼 버렸다. 이번 개정안이 얼마나 급조됐는지를 드러낸다”며 개정안에 대해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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