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난주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대선후보 단일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유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바른정당의 '대주주' 김무성 의원이 지난 15일 만나 이 같은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대선후보 단일화뿐 만이 아니다. 바른정당과 자유당 복수의 의원들은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정당 통합' 가능성을 언급했다. 단일 후보를 선출해 대선을 치른 후 통합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새누리당 시즌2가 시작될 기세다.

▲지난 1월 24일 바른정당 창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소속 인사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등에 대해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창당한 정당이다. 면면도 화려하다. 소속 국회의원 33명 중 22명이 3선 이상 중진의원이다. 국회의원 외에도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바른정당과 함께 하고 있다.

초반 기세도 대단했다. 바른정당은 창당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2~3위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국민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보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른정당은 극심한 지지율 하락현상을 겪으면서 원내 의석 6석에 불과한 정의당과 4~5위를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지사가 경쟁 중인 조기대선 후보 경선도 무관심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바닥을 쳤던 자유당은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고, 바른정당은 보수 적통 경쟁에서도 뒤처지는 모양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바른정당과 자유당의 후보 단일화와 통합이 언급되는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당연한 수순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자유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홍준표 지사는 "바른정당이나 자유당이나 둘 다 같은 정당"이라면서 "이혼한 게 아니라 별거하고 있을 뿐"이라고 합당의 명분까지 만들어줬다. 그러나 바른정당이 당장의 지지율 침체와 조기대선에 눈에 멀어 후보 단일화, 더 나아가 합당을 진행한다면 큰 비판 여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바른정당이 단일화·통합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유당은 여전히 '친박당'이다. 자유당이 5월 9일 조기대선과 함께 열릴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재보궐 선거에 공천한 인물은 대표적인 친박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또 자유당 대선후보 경선 역시 홍준표 지사를 제외하고는 친박이 득세하고 있다. 특히 홍 지사를 위협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해온 '강성친박' 김진태 의원이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며 뛰쳐나온 정치인들로 구성된 정당이다. 김무성 의원은 바른정당 창당 당시 "우리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세우려고 애썼으나 새누리당의 후안무치한 패권정치, 대한민국의 헌법 유린과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다"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자유당과 단일화, 합당까지 염두에 둔다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셈이 된다.

바른정당과 자유당은 노선도 다르다. 바른정당은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를 전면에 내걸고 자유당을 '가짜 보수'라고 비판해왔다. 특히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주장했던 '중부담·중복지', '재벌개혁' 등을 내세워 자유당과의 정책노선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북정책 분야에서 강경책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만 유사점이 있을 뿐이다.

자유당이 과연 건전한 보수인지도 의문이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역사 등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데, 자유당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보수는 일반적으로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기본인데, 지금까지 친박이 보여준 헌재 불복, 재벌 비호 등의 행태는 보수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결국 바른정당이 자유당과 통합에 이르게 될 경우 권력지향적 이합집산이라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과 같이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자유당과 통합의 길을 가게 된다면 이는 '합당'이 아닌 '흡수'의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지키겠다고 했던 '진짜 보수'의 가치는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내에서도 지난 4·13총선 친박 공천 파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친박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른정당은 자신들의 지지율 침체가 잘못된 배신자 프레임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잘못된 프레임에 낙인 찍혀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잘못된 것에 대해 바로잡자고 직언을 하고 탄핵에 가담한 것은 대의를 지킨 것이지 배신한 것이 아닌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본격적인 지지율 침체는 유승민 의원의 자유당과의 선거연대 주장부터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바른정당은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 된 시점부터 보수단일화론으로 인해 '도로 새누리당이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경필 지사는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 "유 후보가 보수후보 단일화를 처음부터 말하는 바람에 바른정당이 갈 길을 잃었고, 지지율이 급락하는 원인이 됐다. 이는 해당행위"라고 꼬집었다.

바른정당은 이제 창당 2개월 된 신생정당이다. 바른정당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조기대선에서의 보수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자신들이 약속한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흔들리는 순간 실패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은 바른정당을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정권에 협조한 '부역자'로 의심한다. 바른정당은 창당 당시 무릎까지 꿇으며 사죄하고 보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국민 앞에 약속했던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친박세력에 또 다시 부역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을 갖고 건전한 보수 정착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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