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모습’.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를 수습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를 두고 일본 언론이 내린 평가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죄성명, 총리의 사과,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규명 약속까지. 사건이 벌어진 지 단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질세라 외교통상부 장관도 한 몫 거들고 있다. 내각이 온통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도무지 용산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참사는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아직까지 원인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의도적인 방화보다는 사고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사격장이 정부시설이었던 것도 아니고, 공권력의 개입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건의 원인도 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장관과 총리, 대통령이 무조건 사과를 하고 나섰다. 용산은 어땠나? 용산은 공권력의 폭력적 개입으로 야기된 참사였다. 이번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부의 책임이 큰 사건이었다.

▲ 지난 16일 경향신문 1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목숨과 목숨이 갖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생명에 대해 국가가 어떤 입장을 취했던가. 두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10명이 숨지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2007년의 여수출입국관리소의 화재사건과 2008년 무려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두 사건 모두 중국동포, 조선족, 동남아시아 노동자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다.

여수출입국관리소 사건 때는 정부가 가둬놓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으니,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금과 같은 신속한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 심지어 정부차원의 사과보다는 책임을 물어 관계자들을 경질하는 데 더 바쁜 모습을 보였다. 이천 참사 때는 어땠나?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등이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유가족들에게 사과는 커녕 ‘정부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부산참사와 이들의 차이는 결국 ‘돈’이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무안한 감이 있지만, 우아하게 표현할 능력이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일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차치하고라도, 한국 관광객의 70%가 일본인이라는 통계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번 사건의 대처가 드러내는 것은 ‘돈이 걸리는 죽음’과 ‘돈과 상관없는 죽음’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경제대국 국민의 죽음 앞에서는 극진하다 못해 비굴하다는 평을 들어가면서까지 예우를 차리는 반면, 저개발국 국민의 죽음 앞에서는 차갑게 책임 운운하는 태도가 주는 대비는 사람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비단 외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용산의 억울한 죽음들에 대해 사과는 커녕 ‘폭도’로 매도하는 데까지 이르면, 한편으로 싸늘하게 얼어붙는 마음에 천불이 난다. 국가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경제적 가치에 따라 상반된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죽음마저 냉철하게 바라보는 실용적인 관점을 상찬해야 하는 걸까,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조차 ‘루저’ 취급을 받는 필부들을 대신해 슬퍼해야 마땅한 걸까.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은 생명을 대하는 기본자세라고 봐도 좋다. 사과는 할 수 있다. 아니, 하는 것이 더 좋다. ‘일본이라서 그랬냐’며 비아냥거릴 필요도 없다. 복잡한 외교적 수사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 사람의 목숨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는 정부라면 족하다. 다만,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공권력이 살해’한 용산의 억울한 죽음에 사과하지 않는 정부가, ‘일본인의 사고사’에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몇 푼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구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정부에 묻는다. 당신들은 지금 환원불가능한 생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고 있는가,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읍소하며 구걸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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