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의 수다>에서 이른바 ‘180cm 이하의 남성은 루저’라고 말한 그의 발언이 위반한 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말함으로써, 밝혀지지 않아야할 향락의 주체를 스스로 떠맡아 노출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티 시대 향락의 묵계를 깬 것이다. 이 과잉된 향락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루저논란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17일 오후, 문화연대가 주최한 ‘KBS 미수다, 루저(Loser)인가?’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은 <미녀들의 수다>의 루저논란을 두고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빗대어 이같이 설명했다.

▲ 문화연대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미디액트에서 'KBS 미수다, 루저(Loser)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권순택
서울 종로구 미디액트에서 개최된 이날 토론회에서 홍 위원은 “180cm에 대한 집착은 우리 시대의 가장 표준적이고 도착적인 향락의 논리를 대변한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 다른 대중문화의 단편을 살펴보면 ‘숏다리’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우유 광고와 각종 어린이 영양제 광고 문구의 키워드 역시 ‘키’에 있다”면서 “문제는 ‘루저’발언이 아닌 180cm라는 관용이 가능하게 된 우리 사회의 구조”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홍 위원은 “우리 사회의 문제는 ‘향락’에 있지 그를 누설한 이에 있지 않다”면서 “이번 루저 논란으로 다시금 개인의 취향문제에 잣대를 들이댄다면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네티즌들이 철없는 이 모 씨의 발언에 발끈해 인터넷에서 다양한 패러디를 쏟아내며, 심지어는 마녀사냥처럼 한 명의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것의 실상은 180cm에 대한 선호를 관용하는 시대의 짝패”라면서 “이같은 비합리적 폭력은 오늘의 과잉 향락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으로 주의 깊게 귀담아 들어야할 정치적 제스처”라고 덧붙였다.

홍 위원은 이어 “KBS가 이 문제를 오로지 한 출연자의 부적절한 행위로 눈속임하려 한 것은 문제”라면서 “오히려 KBS에게는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KBS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적 기관 즉 대의(사회의 가치)의 생산자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 모 씨에 대해 ‘철없는 발언이었다’, ‘타인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고 질책하면서도 문제의 책임은 공영방송 KBS에 있다는 의견에 동조했다.

‘꿀벅지’는 언론에서 버젓이 나오는 현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조선일보>가 ‘된장녀’를 상품화했듯이 KBS <미녀들의 수다> 역시 그동안 (여성을) 상품화 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 루저녀 논란을 ‘된장녀’사례와 비교했다.

그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여성에 대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드러난 것이 ‘된장녀’였지만 이는 담론화된 반면 <미녀들의 수다>에서 이 모 씨가 남성을 대상화한 것은 논란이 됐다”며 “이 시대의 강자와 약자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한 사건”이라고 씁쓸한 모습을 보였다. 향락의 대상이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사회적으로 다른 반응이 나왔다는 얘기다.

플로어에 있던 고재열 시사IN 기자 또한 “<미녀들의 수다>의 루저발언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여성들을 비하하는 발언인 ‘꿀벅지’”라면서 ‘꿀벅지’는 표현이 언론을 통해 버젓이 사용되는 상황과 비교하기도 했다.

김 평론가는 또한 “KBS가 방송법에서 ‘신체적 차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제작진은 패널 선정에서부터 ‘여자는 남자를 위해 몸단장을 하니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대야 한다’ 등의 반응이 나올 것이 예상되는 사람을 섭외하고 그에 상응하는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김대오 CBS 노컷뉴스 방송연예팀장은 “180cm 이하 루저 발언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선정적인 문법에 맞아 떨어지는 언어 행위였다”면서 “루저 발언의 책임은 출연자 한명에게 지울 수 있는 건 아니고 제작진, KBS 대응 및 게이트 키핑의 실패였다”고 주장했다.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도 “지금까지 <미녀들의 수다>가 논란이 될 때마다 제작진의 변명은 항상 ‘다문화사회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등의 대의를 이야기해왔다”면서 “루저라는 발언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제작진에서 충분히 그런 대의의 방향으로 정리하는 세련된 편집을 보여줬더라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루저논란의 책임은 KBS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남성 출연자였던 알렉스 역시 자기보다 키가 커 올려봐야 하는 여자를 경멸한다는 듯한 표현을 했었다”고 덧붙였다.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역시 “루저 논란은 프로그램의 부분적인 단순 실수가 아니었다”며 “<미녀들의 수다> 제작진이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간 것인 만큼 반성하고 프로그램 존폐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헌식 평론가는 “<미녀들의 수다>가 루저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문화 사회의 소통’이라는 대의와 명분이 있으므로 존폐까지 논의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문화연구자들 또한 교양프로그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명분을 내세운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회를 본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은 “미디어공공성을 지키기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이럴수록 공영방송 KBS의 특수성을 확인시킴으로써 향락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도록 막는 ‘댐 쌓기’가 지금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미녀들의 수다>는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것만이 답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토론회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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