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이 말은 1848년 2월 나온 공산당 선언의 첫머리 글이다. 프랑스 왕정이 무너진 직후 유럽 각지에서 노동자 폭동이 일어나 유럽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 변화하는 시대의 징조를 극적으로 예고해주는 역사적인 표현이다. 이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교황과 짜르.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까지 구 유럽의 열강과 제 세력들이 동맹을 맺었으나 세계는 이 새로운 유령의 침습을 막지 못했다. 고통의 삶을 이어가던 당시의 노동자들도 새로운 흐름이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같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배심제 시행과 사회적 신뢰
지난해부터 몇 차례의 모의 시민배심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의 배심 참여에 의한 재판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시행되기 때문이다. 중요 형사사건에 대해 유무죄 여부를 시민배심원이 판단하는 이 재판제도는 그동안 법률 전문가에 의해 독점되었던 재판 과정에 시민이 참여한다는 점, 검찰이나 변호인이 재판장을 향해서가 아니라 시민의 양식과 상식에 입각한 판단을 하게 될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법정 진술을 한다는 점에서, 재판의 형식 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데도 큰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선거 시기가 되면, 우리의 대통령 임기가 5년인 까닭으로 5년 단위로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쓰게 된다. 그런 이유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따위의 말들이 생겨났다. 대선을 한 달 남겨놓은 지금 습관적으로 다음 정부의 시대적 의미는 무엇이고 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고 등등이 떠올랐다가 이내 그 자리에 가늠되지 않는 유령들이 자리하고 만다.
‘장막’을 제거하기보다는 더 짙게 치려는 언론
그래 이제 내가 재판관이 되어야겠다. 시민의 양식과 상식을 갖춘 눈으로 보면, 스스로 자기 눈을 감지만 않는다면 밝게 못 볼 리가 없다. 유령과 거짓의 장막 뒤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눈이 문제다. 어리석은 듯, 전문성이 없는 듯, 갖은 세파에 왔다갔다 가치관의 정립이 뚜렷하지 않은 듯, 우리가 항상 주위에서 보는 우리의 이웃들, 평범한 필부필부들이 유령과 거짓을 걷어낼 수 있는 배심원이다. 아니 구차한 진실공방을 넘어서 앞으로의 5년 10년 다음 세대, 다가올 시대의 징조와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야 할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 6백 년 전의 영국으로 돌아가,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진실을 숨기고 부인하면서 맷집이 좋아 견뎌내면 무죄가 되는 신판(神判)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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