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앞은 번잡스러웠다.

KBS 본관 앞, 지난 13일 KBS쪽과의 교섭결렬로 총력투쟁을 선포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 지부 노조원들이 손팻말을 든 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었다. KBS 청원경찰들은 이들 뒤에 서서, 혹여나 이들이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움직임 하나 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오전 11시40분,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이 기자회견 준비를 시작하자 KBS쪽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KBS 본관 출입문 앞을 지키던 십여명의 청원경찰들은 수십여명으로 늘었다. 본관 출입문도 제한됐다. 매달 꼬박꼬박 수신료를 납부하고 있는 KBS의 주인인 시청자들에게도 본관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KBS 본관 앞으로 시청자들이 올 때 마다, KBS 관계자들은 “옆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 언론노조와 미디어행동 등이 17일 오전 11시40분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언론·시민사회단체 “홍미라 후보, 지지한다”

언론노조 비롯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KBS 사장 후보 5명 가운데 홍미라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지부장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은 “공영방송 철학이 투철한 홍미라 사장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뒤 “KBS를 관제방송으로 만든 이병순씨와 부적격 사장후보는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3일 KBS 사장추천위원회는 서류 심사 과정을 거쳐 이병순 현 KBS 사장,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 강동순 전 KBS 감사, 이봉희 전 KBS LA 사장, 홍미라 언론노조 KBS 계약직지부장 등 5명을 후임 사장 후보로 압축했다.

마이크를 든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홍미라 지부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며, 국민의 재산이다. 4천5백만 국민 가운데 KBS 사장이 될 수 없는 세 사람, 이병순, 김인규, 강동순씨가 사장 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언론인의 염원을 담아 홍미라 지부장이 공영방송 사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길을 잃고 있는 KBS가 제 길을 찾고, 공영방송 역할을 잘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홍미라 지부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동시에 KBS를 향해 뼈 있는 충고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최상재 위원장은 KBS가 갈 길을 잃었다고 말했는데, KBS는 갈 길을 잃었을 뿐 아니라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다”며 “공영방송이라면 국민의 편에서 국민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고 방향을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미라 지부장이라면 지금보다 나은 KBS를 이끌어 줄 것”이라며 “국민의 올바른 알권리를 보장하는 KBS가 될 수 있도록 민주노총도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근행 언론노조 MBC 본부장은 KBS 구성원들을 향해 가열찬 투쟁을 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병순, 김인규, 강동순, 이 세 사람이 공영방송 KBS의 사장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더 중요한 것은 KBS 구성원들의 의지이다. 노조를 비롯해 사원행동, 구성원들은 지금 얼마나 언론인으로서 중요한 책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KBS 구성원들이 지금이 KBS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깨닫고, 부적격자 후보를 몰아내고, 가열찬 투쟁으로 일어설 때 언론 노동자들도 함께 할 것이다.”

언론노조는 “KBS를 관제방송으로 후퇴시킨 이병순씨의 사장 연임에 대해 강력 반대한다. 또 이명박 후보 방송특보 출신으로 통신사들에게 250억 원을 강요했던 불법기금 모금의 당사자인 김인규씨와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언론장악을 논의한 녹취록 파문의 주인공인 강동순씨도 부도덕함과 정치적 편향성에서 공영방송 수장에 절대 부적격함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 KBS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언론노조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KBS 본관 출입을 막고 있다. ⓒ송선영
“이병순 사장의 방해로 홍미라 사장 후보 설명회 무산”

당초 이날 낮 12시10분부터 본관 앞에서 ‘홍미라 KBS사장 후보에게 듣는다 - 대시민설명회’가 예정돼 있었다. 본관 1층 시청자광장에서 농성중인 홍 지부장은 현재 KBS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홍 지부장은 KBS로부터 “KBS 밖을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엄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자회견을 마친 언론노조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오전 12시20분 홍 지부장에게 KBS에 대한 전망을 듣기 위해 본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KBS는 재빠르게 청원경찰들을 배치한 뒤 아예 본관 출입문을 폐쇄했다.

최상재 위원장을 비롯한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우리도 수신료를 내는 국민인데 왜 시청자 광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며 “이런 식의 KBS를 만든 사람이 더 사장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평소 KBS본관 1층 시청자광장은 누구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출입이 제한된 것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청원경찰 쪽은 KBS 홍보팀에 연락을 취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으나, 홍보팀과 연락이 닿은 뒤에도 여러 이유를 둘러대며 대답을 회피했다. 대오를 갖춘 채 서 있던 한 청원경찰은 기자를 향해 “죄송해요. 여기 길 터주면 내가 짤려요”라는 말을 남기며 미안해했다.

결국 이날 홍미라 지부장의 대국민 설명회는 무산됐다. 사회를 보던 언론노조 관계자는 “이병순 사장의 방해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출입문 폐쇄’로 KBS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던 홍 지부장은 휴대전화를 통해 KBS 사장에 출마하는 이유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비전 등을 간략하게 밝혔다.

“KBS는 공영방송의 모습을 잃었다. 기자들의 취재도 방해하고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 시청자광장을 비정규직 직원들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나는 공영방송 KBS를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며 현재의 KBS를 닮지 않게 하기 위해 나왔다. 공영방송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고, 정치적인 입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 때, 당시 광경을 보던 할아버지 한 분이 기자를 향해 물었다. “시골에서 왔는데 홍미라가 누구냐? 왜 지금 출입을 막고 있냐?”고. 이에 기자가 ‘홍미라 지부장은 KBS 사장 후보 중 한 명이며, 대시민설명회를 하려는 것을 KBS가 문을 폐쇄해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 출입문 폐쇄로 밖으로 나오지 못한 홍미라 지부장이 휴대전화를 통해 KBS 사장에 대한 비전 등을 밝히고 있다.
“KBS노조, 왜 유독 한 사람만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병순 연임 반대 및 낙하산 선임 반대를 위해 오늘 단식 농성에 돌입한 김덕재 KBS PD협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기자들은 김 회장의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시청자광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려 했으나, KBS는 언론노조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기자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단식 농성에 돌입하게 된 이유’에 대해 “KBS 사장추천위원회가 사실상 아무 의미 없게 되어버렸다”며 “KBS 사장은 정치적, 독립적인 인물이 와야 하는데 데에도 이병순, 김인규, 강동순은 부적격한 인물이면서도 사실상 KBS 사장으로 오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식 농성에 돌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KBS노동조합은 당초 이병순, 김인규, 강동순을 ‘사장 절대 불가’ 인물로 선정했으나, 이후 김인규 후보에 대해서만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김인규 후보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해야 하지만, 왜 동일선상에서 후보들을 놓지 않고 한 사람만 유독 반대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왜 김인규 후보만을 반대하겠다는 건지, 이병순 사장을 용인하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이병순 사장에 대해서는 ‘인격개조’를 언급하며 사실상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사장을) 인정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조원 76.9%가 이병순 사장 연임에 반대한 만큼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뜻을 받아들여야한다. 성격을 개조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PD협회가 지난주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이병순 사장에 대한 연임 반대 서명을 실시한 결과, 오늘 까지 약 5백여명의 PD들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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