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해외에서는 간디, 국내에서는 도산 안창호 씨를 존경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민족의 지도자에 대해 ‘씨’를 붙여 호명해서다. 이미 ‘마사지걸’ 등의 발언으로 입만 열면 문제를 일으켰던 이명박 후보였다. 말 그대로 ‘인격’이 의심스러웠다.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도산 안창호는 4대정신(무실, 역행, 충의, 용감)으로 인격개조와 민족개조를 주창했다. 미국에서 흥사단을 조직하며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 남녀를 단합하여 정의를 돈수하고, 덕·체·지 삼육을 동맹 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작성하고 신성한 단결을 조성하여 우리 민족 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하고자 하였다.

▲ KBS노조가 사장추천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한 호텔 주차장에서 공정한 심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KBS특보

인격개조의 전제는 4대정신이었다. 4대정신의 기본을 겸비해야 누군가의 인격을 개조하고 나아가 민족 개조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이야기다. 4대정신의 첫 항목으로 ‘무실’을 꼽는다. 무실은 참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으로 거짓과 기만을 부정한다. ‘역행’은 참이라고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에 힘쓰자는 뜻이다. ‘충의’는 신의과 충성심을 의미한다. ‘용감’은 옳은 일을 위해 두려움 없이 돌진하되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참고 견뎌야 함을 말한다.

KBS노조가 발간하는 ‘KBS특보’ 42호(11월16일자)에 ‘인격개조’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정치독립적 사장 선임 투쟁, 노동조합의 입장은 이렇습니다’라는 Q&A 중 한 대목이다.

“Q5> 그렇다면 만에 하나 이병순 사장이 이사회의 최종 1인으로 선정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되면 조합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A> 이병순 사장이 다시 연임을 하더라도 노조는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부 구성원 76.9%가 이병순 사장의 염임을 반대하고 그 반대 이유를 들여다보면 독립성의 약화와 인격모욕적, 권위주의적 경영행태 전반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과 불신이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합은 이병순 사장이 만약 연임이 된다면 조합원들이 지적하신 이병순 사장의 부족한 자질인 정치적 독립성과 민주적 리더십, 공영방송 마인드, 경영능력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 출근저지 투쟁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순 씨가 결국 인격개조에 버금가는 개선의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필요하다면 조합은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까지 불사해 이병순 씨에 대한 인격개조 작업을 확실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이병순 사장이 연임된 후에도 약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총파업투쟁을 벌여서라도 이병순 사장의 인격을 개조하겠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이번 KBS 사장 선출을 앞두고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나 부적절한 논란이 없도록 추후 선임 절차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연주 사장 판결, YTN 판결, 신태섭 전 이사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 등, 정치권력의 방송장악에 대한 사법부의 잇따른 심판이 큰 부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7:4의 이사회 힘 관계에 이상이 없다면 청와대가 맘에 품은 후보를 얼마든지 사장 자리에 앉힐 수 있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지난해 8월처럼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다. 청와대가 어떤 후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잣거리에는 일찌감치 “이병순 아니면 김인규”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 이병순 KBS 사장
이런 와중에 KBS노조는 김인규 후보에 대해서는 ‘구속과 해고의 결의’를, 이병순에 대해서는 ‘인격개조’를 선언했다. 둘 다 좋은 일이다. 다만 ‘구속과 해고’는 법을 지켜가며 투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도산 안창호에 따르면 ‘인격개조’는 4대정신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으로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KBS노조가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이라는 4대정신의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무실(참되고 진실)한가? 김인규, 강동순 후보는 부적격하나 이병순 후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적격 후보로 강조하지 않은 부등가의 판단은 참과 진실에 부합하는가. 역행(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가? 세 후보가 모두 부적격이라면 홍미라 후보 등 나머지 2인의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도 표명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충의(신의와 충성심)는 어떠한가. 조합원 76.9% 반대 여론을 참고사항 정도로 생각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신의를 저버리지는 않았는가. 용감(두려움 없이 돌진)한가? 특보 출신이 임명제청 되면 구속과 해고를 결의하고 정권 퇴진 투쟁에도 나선다 하니 좋은 일인데, 단지 용감하기만 한 건 아닌가.

‘구속과 해고의 결의’에다 ‘인격개조’ 모두 호기로운 선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제안컨대 무실, 역행의 정신으로 지난 14개월동안 공영방송 KBS를 직접 망가뜨려놓은 이병순 사장부터 ‘부적격’ 처분을 내려 조합원들로부터 충의를 얻고, 이병순 사장 후임으로 사장 자리에 앉은 이가 또 이병순 사장처럼 하면 그때는 용감의 정신을 발휘해봄이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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