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에 대한 국가 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휴교를 하는 학교도 늘고 있고 자체 진단하에 집에 있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부모들은 막상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경우들이 많고 이 아이들이 PC방에 모이면서 확산이 오히려 가중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휴교를 했지만 학원에서는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과연 예방이 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한편 휴교를 하는 통에 무료 급식이 끊겨서 잘 먹어야 면역력이 증강됨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생기고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어린이 집이 휴교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하는 부모도 늘고 있다.

지하철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가족이 신종플루로 확진을 받았을 때 휴가에 대한 규정이 없어 출근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한다. 과거 문둥병이라 불리우며 전염력도 거의 없는 한센병 환자를 섬에 고립시켜 살게 하거나 B형 간염 보균자나 에이즈환자라는 이유로 같이 밥도 안 먹고 취업을 제한하는 사례와 같이 전염병 환자에 대한 뿌리 깊은 인권침해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숨어서 미소 짓는 제약 자본

▲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오마이뉴스 유성호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예측하듯이 바로 제약회사들이다. 타미플루는 다칠 때 바르는 ‘빨간 약’만큼이나 전 국민이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한 약이 되었다. 타미플루 판매량은 전 세계적으로 2008년에 비해 2009년 상반기에만도 203%가 넘는다고 하고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로슈는 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백신 시장 역시 100억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타미플루는 현재까지 신종플루의 치료에 상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약값 때문에 저개발국가에서는 실제 구매 자체가 어렵다. 멕시코에서 최초 유행 당시 사망자가 많았고, 특히 빈곤층의 사망률이 높았던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제약회사의 특허권과 관련한 문제는 이미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과 관련한 논란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가 있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사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이미 존재해왔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강제실시를 주장하기도 했다. 타미플루를 우리나라 제약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전에도 많은 환자들이 약이 비싸서 죽었던 것이다. 또한 제약회사가 돈이 되는 약만 만들기 때문에 구매력이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앓는 말라리아 약은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종플루가 북미가 아닌 남미나 아프리카 등에서만 유행을 했다면 로슈는 이렇게 많이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들어봤자 살 능력이 없는데 약을 왜 만들겠냔 말이다.

취약한 우리의 삶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는 매일 다양한 사업장을 돌아다니면서 건강상담을 하는 의사이다. 신종 플루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신분증을 맡기는 것뿐만 아니라 더러운 체온계로 체온을 확인시켜 줘야 하거나 피부에 자극이 많은 소독제로 손을 닦아야만 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 사업장을 방문해서 건강 상담을 하는 내게 “병원에서 나와서 독감 접종을 해 달라”거나 “맞으러 갈 시간이 없으니 신종플루 접종을 사업장에 와서 해 달라”거나 “우리 회사는 출장이 많으니 타미플루 좀 갖다 달라”거나 “사장님이 해외 출장 일정이 있는데 타미플루 처방을 해 달라”거나 “이런 상담이 다 무슨 소용이냐? 타미플루나 좀 가져다 달라”거나 하는 무리한 요청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과 상담하다가 전염되면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걸려서 쉬게 되는 것도 걱정이고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갈 시간도 없고 매일 10시간씩 일을 하니 병원 갈 틈도 없다는 그들의 사정도 이런 불안을 느낄 만큼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와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전염병과 같은 재난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인식하고 필요한 요구들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본인이나 가족 중에 누구라도 전염병이 발생하면 유급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아픈 가족과 함께 요양을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해야 한다. 전염병이 심각한 단계에서 만이라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식을 늘리고, 아프면 언제든지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가져야할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정책들이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 받지 않도록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해야 하고 공공의료와 일차의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의료 정책의 흐름을 전환해야 한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더라도 보살핌이 가능할 수 있는 사회적 체계를 만들고 제약회사의 특허권에 저항해야 하고 새로운 바이러스를 양산하는 축산 산업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무엇하나 금방 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한번 상상해보자. 이런 보건의료체계와 정부, 제약회사와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신종플루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면, 한국의 경제적 수준이 아프리카와 같았다면 하는 가정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조금만 더 치명률이 높은 인플루엔자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혼란이 아니라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타미플루에 듣지 않는 바이러스가 나오고 이에 대한 신약이 비싼 가격에 팔린다면 치료조차 못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가정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바람은 언제든지 불 수 있다. 바람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지 않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불이 꺼지지 않는 튼튼한 등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바람에도 우리의 삶은 건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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