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의 등불 같다. 신종플루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들어 이렇게도 극명하게 우리가 처해 있는 노동권, 사회권, 건강권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사례는 없다는 생각 든다. 신종플루와 관련한 문제는 보건의료운동의 주요한 화두였던 공공의료체계의 문제와 일차의료의 역할, 제약자본의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관련한 노동권과 질병에 대한 예방과 인정의 문제도 있다.

여기에 집단 축산 산업과 관련한 생태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규모 사업장이라는 노동시장의 분할과 불안정성 문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라는 노동조건의 문제도 녹아있다. 또한 전염병이라는 예측 가능한 재앙에 대처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와 보육과 교육의 문제, 광우병에서도 제기되었던 사전 예방의 원칙에 대한 정부의 무개념 대응, 에이즈 환자 운동에서 드러났던 전염병 환자들의 인권문제까지 말이다. 층위와 범주는 다르지만 한국 사회 모순의 용광로가 터져 나온 느낌이다.

그 시작, 인간의 탐욕

신종인플루엔자가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의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당시, 우리의 관심은 ‘이것이 한국사회에서도 유행을 하게 될 것인가?’와 조류인플루엔자, 광우병과 같이 생태적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인간 중심의 축산 산업이 결국 모두를 재앙에 몰아넣고 말거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조류독감과 돼지독감 바이러스, 인간의 독감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 되면서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원래 섞이면 안 되는 인간과 동물의 바이러스가 합체 되면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트랜스포머가 된 것이다.

▲ 신종인플루엔자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 있다.ⓒ오마이뉴스 유성호

확산을 불러온 한국의 시장 중심 의료체계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가 필요해지면서 정부에서는 신종플루 거점병원을 지정했다. 이때 서울대병원은 감염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격리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했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입장을 철회했다.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대부분의 민간의료기관은 혼란에 빠졌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음압 시설이 되어 있는 병실은 대학병원들의 기피대상 중에 하나이며 이로 인해 결핵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미 수차례 있어왔는데 전염력이 훨씬 높은 신종플루 환자를 치료하라니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관련 검사 인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확진검사를 해야 하니 담당 노동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상황을 몇 달째 견디고 있다. 또한 국립대병원이지만 실제로 돈이 안 되는 치료시설은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현상이나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 따위는 뒷전인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종플루의 전염성과 치명률을 고려할 때 일상적으로 고위험군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동네 병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에 한국의 일차의료는 너무 부실하다. 대학병원에는 환자들이 줄을 서서 진료를 받고 개인 병원은 다른 환자들이 안 오고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신종플루 환자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물론 한편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환자 때문에 진료비와 검사비로 수입이 늘었다고 이야기하는 의사들도 있다. 신종플루의 진료 과정에서 대학병원, 개인병원은 요지경의 천태만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에게 전가된 비용

여기에 12만원이 넘는 확진 검사 비용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확진 검사는 전염병의 발생 추이를 확인하고 예방 및 관리 대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계절 독감과 매우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신종플루의 특성상 감별이 어렵기 때문에 확진 검사를 해서 실제 발생 추이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종플루나 계절플루 모두 타미플루를 복용하면서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개인적 차원에서 보자면 확진이 되고 안 되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물론, 그렇기 때문에 확진이 안 된 상태에서 타미플루를 복용한 사람은 예방접종을 받으라고 권하게 된다.) 공중보건의 차원에서 필요한 확진 검사를 개인에게 부담을 하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그래서 저는 그냥 확진 검사 안 하고 타미플루만 먹었어요.”라고 고백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는 백신도 마찬가지이다. 백신은 개인의 면역력을 높여서 병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는 일차적 목적도 있지만 집단 면역을 형성해서 전염병이 더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반 의료기관에서의 접종비를 1만 5천원으로 책정했다. 보건소까지 가기가 어렵거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의 경우 온전히 개인 부담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계절 독감 백신이 덩달아 품귀 현상을 빚고 접종비가 3-4만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실제 일부 개인병원에서는 신종플루 백신 접종에 대한 선착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여파가 걱정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 질병관리본부 웹사이트 첫페이지

침해 받는 노동권과 노동자의 건강

혼란이 가중되면서 내가 받은 가장 많은 질문들 중 하나는 “사업장에 신종플루 환자가 생겼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란 질문과 “며칠을 쉬게 하고, 언제 어떻게 복귀 시켜야 하나요?”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상에 전염병이나 정신질환 등 다른 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경우에는 근로금지를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임금 대책은 어디에도 정리되어 있는 바가 없다. 심지어 일부 지방 노동청에서는 ‘무급으로 하는 게 맞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사업장별로 노동형태별로 ‘알아서’라는 관리 원칙이 정해졌다.

노동조합이 원칙적 대응을 한 사업장은 본인은 물론 가족이 의심환자 이상일 때도 유급으로 병가 사용이 가능하도록 조처한 반면 노동조합이 없거나 힘이 약한 대부분의 사업장은 무급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 보니 ‘가족이 신종플루 확진인데 나와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거나 마스크를 하고 와서 ‘(옆에 있는 노동자의 딸이) 신종플루라는데 나와서 일을 하니 불안해 죽겠다’며 걱정을 하는 노동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가장 좋은 예방 방법이라고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불안 속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체 일을 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또한 신종플루에 걸려서 해고된 특수고용직 간병인이나 AS 기사의 사례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처럼 신종플루는 우리 노동시장의 특성도 극명하게 반영한다. 예방 백신에 대한 1차적 접종을 보건의료인에게 실시하면서 실제 환자들과 가장 접촉이 많은 간병인이나 청소노동자가 병원의 직접 고용 의료진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심한 감기나 몸살이라도 나와서 일할 수밖에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고,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감내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신종플루가 의심되지만 임금도 걱정되어서 그냥 참으면서 일을 하고 있고, 작업과정에 감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인정이 어려운 노동자들도 여전히 있다.

확산을 막지 못하는 정부의 대책

이런 혼란의 가운데 정부가 있다. 구매 시기를 놓쳐서 백신을 제때에 접종을 하지 못해 우리나라의 경우 유행이 진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월이나 되어야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이 시작될 수 있다. 국내 백신 설비의 완공을 당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문제로 그 완공시기가 늦어져 결국 공장 완성에 드는 것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료비와 백신 구입비로 사용한 것도 정부이다. 유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손 씻기’말고는 적절한 홍보와 위해도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항상 한발씩 늦게 내놓은 대응책은 허점이 많았고 언론은 연일 사망자의 신상명세를 공개하는 데만 급급했다.

백신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부가 도대체 뭘 하는 거냐며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정부의 늑장 대응이 한국의 기형적 의료시스템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에 일차적 원인이 있지만 그 기저에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정부의 인식부족이 깔려있다.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을 애써 무시하며 ‘계절형 독감보다 사망률이 낮다’거나 ‘그렇게 심한 병이 아니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한다.

질병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서 교과서대로, 원칙대로 접근하면 된다. 환경보건 교과서에는 위험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흔히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하에 국민 한명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미리 미리 대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위험을 홍보하고 소통해왔다면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기저에 깔고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은 줄일 수 있었다. 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를 겪었고 전염병에 대한 국가적 대비에 대한 요구가 수년전에 있었고 올 가을 대유행을 누구나 예상하던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관련 예산의 우선순위는 항상 밀렸다. 4대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 한명의 생명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 [진보논평]신종플루와 우리들 삶의 취약성 ② :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회적 취약성'은 곧이어 이어질 예정입니다.

'진보전략회의'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진보전략회의'는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 회원들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본 지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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