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콜 수 못 채웠어”

최근 벌어진 여고생 자살 사건의 배경에는 콜센터의 혹독한 노동환경이 있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기업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발뺌을 할 뿐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가 노동자를 위해서 열일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 사망 미스터리’

이 여고생이 콜센터에 취업한 형태가 취업 연계형 현장실습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여고생의 죽음 외에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현장실습생들의 심상찮은 자살들이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추적한 아이들의 죽음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같은 패턴을 보였다.

장시간 노동, 모욕, 폭언과 폭행 그리고 아이들이 고통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실습생은 분명 학생의 신분이다. 당연히 학교와 기업이 서로 협력하여 아이들의 안전과 권리를 지켜줘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아이들의 편은 없었다.

학교는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무조건 참기를 강요했고, 실습을 나갔던 기업에서 못 견디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을 따뜻하게 감싸기보다는 오히려 인내력이 부족한 것으로 부정적 평가를 주었다. 학교가 그럴진대 기업이 알아서 실습학생의 권익을 위해 노력을 했을 리는 없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 사망 미스터리’

학교는 학생들의 전공과는 무관한 기업이어도 상관없이 아이들을 내보냈고, 그런 학교의 무성의하고 무개념한 실습체제에 기업들은 그저 값싼 노동력을 충족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소위 특성화고 등의 현장실습의 현실이었다.

오죽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를 한 한 노무사는 “학교가 거대한 불법 파견업체로 전락되어 있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 노무사에 의하면 “현장실습은 비정규직으로 진입하는 창구가 되어버렸고” 그 결과 영세한 사업체들로서는 더 싼 값으로 쓸 수 있는 인력이 확보되는 현장실습체계로 인해 노무 구조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거나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찾아낸, 현장실습으로 목숨을 잃거나 버린 아이들만 해도 여러 명. 과연 이래 놓고도 세월호가 과거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세월호 때에는 아이들에게 가만 있으라 해놓고 어른들만 도망쳤고, 현장실습의 어두운 시스템 속에서는 아이들에게 참으라고만 하고 있다.

전북민노총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제는 그 말대로 참은 아이들에게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집안형편이 어렵거나 혹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부모가 알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분명 현장실습은 교육의 일환이고, 그런 이상 아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 정반대였고,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통과 좌절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학교의 취업률 숫자 맞추기를 위해서 전공과 상관이 없어도 아무 업체나 실습을 나갈 수 있게 한 시스템에 의한 살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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