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가령 지난해 대학 입학을 앞둔 조카가 교대와 어지간한 기업은 입사가 쉽게 된다는 실용 대학을 놓고 고민할 때 난 주저 없이 말했다. ‘조카야 니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때면 초등학생의 수는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고, 실력 빵빵한 니 선배세대부터 밀린 교대생들의 적체는 끔찍할 정도일 것이다. 삼촌은 그냥 취직 걱정이 덜한 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충고했다. 다행히 조카는 삼촌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대학으로 진학했다. 한 학기 동안 실기가 부족해서 고생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후 이 땅에서 벌어질 출생률 저하에 따른 후유증은 눈에 보듯 선하다. 각종 출산 장려책을 내놓아도 아이 낳기를 꺼리는데 지금 보이는 세상은 출산 억제책들에 가까운데 누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

▲ 도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표지
사실 이런 공포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시대 고용구조에서 기인한다. 얼마 전에 읽은 한 책에서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종사자수가 5년 전에 비해 30% 가량 감소했다는 내용을 봤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서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프리터 족’(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세대) 등으로 형상화됐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단어가 나왔다. 바로 우석훈이 상표화한 ‘88만원 세대’다. 사실 이 책은 사서 읽어보지 못했고, 서점에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읽어봤다.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다. 사실 우석훈이나 김규항, 진중권, 홍기빈 등이 내세우는 이야기는 나 역시 거의 공감하기 때문에 이론을 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비판에는 공감하지만 그 공감의 뒤가 허무하다는 것이다. 위로나 대안 제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해본다. 사실 세상은 그들의 논리대로 문제가 많지만 분명히 돌아가고 있고,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거대한 좌절을 맛볼 것 같지만 여전히 현실적 힘을 갖고 있다.

그런 가운데 ‘88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새판 짜기’라는 부제를 담아 내놓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었다. 우선 저자 우석훈의 커리어는 단연 눈에 뜨인다. 정통으로 경제학을 공부했고, 대기업 경제연구소에서도 일 했으며, 정부의 국제협상에 참가하는 등 학문과 실무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던진 ‘88세대’라는 주장의 공포심은 더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그가 내놓은 책은 대안을 제시하는 모양새를 갖는다. 그는 우선 1장에서 정부와 시대를 비판한다. 다음 2장 ‘진陳 짜는 법’에서는 몇 가지 방편으로 이 시대를 대비하는 방법을 말한다. 시민운동으로 만 명을 모아서 정치조직화해보자는 제안도 있고 정당을 활용한 정치 운동도 말한다. 물론 편의점 알바 노조나 시간 강사 노조도 거론한다. 사실 나 역시 시간강사로 일 하고 있기에 이 주장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들은 그다지 공감가지는 않는다. 기존에 나온 이야기들에 자신감을 비롯한 몇 가지만을 더한 퓨전 음식으로 느껴진다. 물론 쌈박한 답을 내놓기 바라는 내 생각도 무리지만 사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새판을 짜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책의 마지막은 당면한 문제들과 그의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학원강사로의 생존법, 갈수록 심각해지는 주거문제의 대처법, 옷 입기, 심지어는 미용 문제까지 길을 제시한다. 또 후반에는 그런 자세를 가진 수강생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나름대로 이 시대에 대처하는 용기 있는 이들에 대한 설명이니 만큼 대안 제시로서의 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사실 저자가 신이 아닌 만큼 그 답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아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서 만드는 오마이뉴스 티브이 가운데서도 주제별 동영상에 있는 ‘[10만인클럽 특강]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제주올레, 발상의 전환을 배우자>’라는 특강이다. ‘프리미엄 콘텐츠’라 어디 등급까지 볼 수 있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이 특강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시시하는 게 많다. 23년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오다가, 몸이 나빠져서 산티아고 도보 길을 걸은 후 고향 제주에 돌아와서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 삶의 이야기다. 발상의 전환은 길을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며, 수도권에 인구의 2/3가 사는 이 미친 구조를 벗어나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아름다운 제안이다. 물론 그녀처럼 23년이나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아파보지도 않았던 이들은 100%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녀가 주는 소중한 메시지들이 있다.

사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생각의 전환이다. 일류대 못가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 대기업에 못가면 3류 인생이 된다는 생각 등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면 인생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일류대에 가고, 대기업에 가서 바늘구멍을 같은 경쟁을 뚫고 간부가 되어 수 십 억원의 재산을 쌓는다고 해도 그가 나중에 만나는 것은 일에 찌들어 상해버린 몸과 자신의 복제품 같은 아내나 자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있으면 세상이 편한 것은 만고의 진리지만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또 큰 기업이라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작은 기업이라도 사람들의 냄새가 가득한 기업이면 그곳이야말로 행복한 기업 아닐까. 서명숙 이사장의 강의는 그런 진리를 지루하지 않게 잘 보여준다. 우석훈의 책 읽기와 더불어 서명숙의 강의 듣기를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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