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7.10.21 토 13:07
상단여백
HOME 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미녀와 야수’,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보이는 이야기... 그래도 속없이 좋구나[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7.03.17 16:45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미녀와 야수>(1992)를 본 적이 있는데, 어릴 때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실사화되어 다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묘했다. 사실 <미녀와 야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번 보았던 영화였고, 레아 세이두와 뱅상 카셀이 출연했던 프랑스판 실사화 영화 <미녀와 야수>(2014)도 보았다. 그래서 디즈니가 실사화를 통해 새롭게 내놓은 <미녀와 야수>(2017)가 궁금하면서도 이런 의구심도 들었다. 디즈니 실사화 <미녀와 야수>가 21세기 첨단 영상 기술을 동원했다고 한들, 원작 애니메이션이 주었던 감동 그 이상을 줄 수 있을까. 

실사화를 통해 재탄생한 <미녀와 야수>는 내용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원작 스토리라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녀와 야수> 자체를 처음 보는 어린 관객이 아닌 이상 모두가 다 아는,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 벨(엠마 왓슨 분)이 저주에 걸린 야수(댄 스티븐스 분)을 구한다는 그 이야기이다. 85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를 129분으로 늘린 만큼 애니메이션 원작에는 없었던 몇몇 등장인물과 새로운 플롯이 추가되었는데, 이 지점이 조금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 이미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에서 야수는 저주가 걸리기 전 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반면, 실사화된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배울 만큼 배운 똑똑한 왕자님이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벨만큼 독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에 관해서 벨과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할 정도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빠 모리스(케빈 클라인 분)밖에 없어 답답해했던 벨이 야수에게 호감을 가진 계기 중 하나다. 21세기 현대 여성들은 어떤 남자가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줬다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물론 디즈니 원작에도 야수가 목숨을 걸고 벨을 구해준 장면 외에도 독서를 좋아하고 매너를 중요시여기는 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시퀀스가 등장한다. 

그런데 디즈니 원작을 새롭게 재해석한 실사화 영화는 책을 어떻게 드는지도 모르는 원작의 야수 캐릭터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리 오만방자했다고 해도 엄격한 가정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을 왕자인데 책을 읽지 못하는 설정이 말이 되냐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이지만, 2017년 버전 <미녀와 야수>는 1992년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요소들을 하나씩 짚고 넘어간다. 야수는 왜 오만방자하고 괴팍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벨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죽었을까. 벨과 야수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극적 요소들이 새롭게 추가됨에 따라 <미녀와 야수>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궁금해 했을 뒷이야기들을 짚고 넘어가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동받은 장면은 다른 장면이다. 야수가 개스톤(루크 에반슨 분)에 의해 생명이 위태로웠던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고, 그 외 어떤 장면을 봐도 눈물이 흘렀다. 모두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았던 장면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아는데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야수와 함께 저주에 걸린 그의 하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벨을 도와주고,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쳤던 콕스워스 집사(이안 맥켈런 분), 르미에 시종(이안 맥그리거 분), 폿트 부인(엠마 톰슨 분), 칩(네이트 맥 분) 등은 늘 벨과 야수 곁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귀여운 캐릭터들에 지나지 않았다. 왜 그들이 벨과 야수를 돕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냥 그들은 원래 저런 캐릭터이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 이미지

하지만 벨은 달랐다. 벨은 야수와 함께 저주에 걸린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한시도 야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들의 선택을 의아해 한다. 그리고 성안의 저주가 풀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폿트 부인은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을 위해서 야수와 억지로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것 같은 벨의 희생을 말린다. 여기서 벨은 놀라워한다. 평생 저주에 갇혀야 할지 모르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저들의 낙관적인 모습에 벨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벨에게는 그녀를 죽자 사자 따라다니는 개스톤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마을 여성들은 모두 잘생기고 남자다운 개스톤을 좋아했지만, 벨은 그가 정말 싫었다. 개스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벨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개스톤이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일방적인 복종이었다. 자신과 달리 지적이고 똑똑한 벨에 흥미를 느끼지만, 자기보다 잘난 여자도 자신의 발밑에서 기게 만들고 싶은 이상한 승부욕. 어린 시절에도 참 별로였지만, 2017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본 개스톤은 여전히 최악의 남자였다. 

평화롭지만 비좁은 마을에서 벗어나 더 크고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던 벨은 공부를 좋아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 이전에 자신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파트너를 원했다. 개스톤이 벨에게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상하관계였고, 야수는 달랐다. 야수도 처음 벨을 만났을 때는 분노조절장애 실패로 그녀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종종 애를 먹긴 했다. 하지만 야수는 곧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했고, 단점을 개선하고자 벨과 머리를 맞대어 고치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녀를 놓아주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야수가 벨의 환심을 산 것은 벨이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여서가 아니라, 벨의 재능을 존중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었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 이미지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벨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캐릭터 그 자체였다. 2017년 새롭게 돌아온 벨 또한 지적이고 배려심 많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현명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러한 벨 또한 야수와 저주에 걸린 성 안의 인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희망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때로 상대방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1992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 당시 <미녀와 야수>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바 있다. 수동적으로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던 이전의 디즈니 공주들과는 달랐던 진보적인 캐릭터였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겨울왕국>(2014)에서는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 캐릭터(안나)가 저주에 걸린 여왕(엘사)를 구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반면, 아무리 새롭게 구성한다고 한들 원작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었던 2017년 판 <미녀와 야수>의 여성 캐릭터는 자신의 도움으로 저주에서 풀려난 왕자의 아내로 남아야 했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 이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2017년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벨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 곁에서 춤을 추는 여성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왕자와 함께든 그렇지 않든 벨은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왕자의 지지를 받으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갈 것이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잘 살 것이다. 샛노란 드레스가 인상적인 여성으로 남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벨, 그녀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녀 혼자 똑똑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인식과 구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여성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 개척하는 동반자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야수의 태도는 여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릴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되짚고 넘어갈 수 있었던 2017년 버전 <미녀와 야수>와 함께한 2시간 남짓한 시간들이 속없이 좋았다.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너돌양  knudol@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너돌양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7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