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뮤지컬계와 영화계에선 ‘이중인격자’가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스크린에서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가 지난달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지금 뮤지컬계는 ‘지킬앤하이드’가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열연으로 무대를 후끈 달구고 있다. EMK의 효자 작품이 ‘엘리자벳’, 신시컴퍼니의 베스트셀러가 ‘시카고’라면 오디컴퍼니는 ‘지킬앤하이드’라는 효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지킬 박사는 알다시피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 타인을 도우려는 이타심에 자신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하다가 악의 본성에 잠식당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뮤지컬 팬들이 지킬 박사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유명한 넘버 ‘지금 이 순간’을 무대에서 만끽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지만, 이타심으로 타인을 도우려다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지킬의 애절함에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엘리자벳’이 유독 사랑받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조승우라는 브랜드에 힘입어 관객들이 다른 나라보다 ‘지킬앤하이드’를 사랑한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오디컴퍼니

같은 텍스트의 뮤지컬을 내한 버전으로 관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어라는 다른 언어가 갖는 신선함 때문에 객석을 찾는 면도 있다. 같은 멜로디라 해도 다른 언어가 선사하는 이질감 가운데서의 신선함 말이다.

이번 글로벌 버전 가운데서 인상적인 면을 언급하자면, 카일 딘 매시가 가장 극적인 넘버를 노래할 때, 조명이 배우를 직접적으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배우의 등 뒤에서 빛을 발산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극적인 시각 효과, 아우라가 조명을 통해 창출된다. 이번 글로벌 버전은 이런 조명 효과를 통해 지킬의 애절함을 시각적으로도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은유적으로 처리되는 장면도 이번 글로벌 버전에서는 노골화됐다. 1막 후반부에서 대주교가 미성년자 소녀에게 치근댈 때 한국 버전보다 소녀의 연기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오디컴퍼니

이번 글로벌 버전의 최대 수확을 손꼽는다면 ‘루시의 재발견’이다. 비극적인 여성 캐릭터인 루시를 연기하는 다이애나 디가모의 대사 연기는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리나 레이먼트를 연상케 만든다. 뮤지컬에서 다이애나는, 영화 속 리나의 목소리에 빙의된 것처럼 평소 대사 톤을 연기한다.

하지만 넘버를 소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답게 넘버를 찰지게 소화할 줄 안다. 다이애나는 넘버의 고저강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 탁월한 진가를 발휘한다. 비록 육신은 몸을 파는 속(俗)의 세계에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지킬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고백하는 루시. 그런 이중적인 면모를 노래로 자유롭게 오고갈 줄 아는 다이애나의 넘버 소화 실력이 이번 글로벌 버전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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