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지만 단순하다”

헌법재판소의 언론법 관련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단순함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좀 필요하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제외한 야당이 헌재에 무엇을 판단해 달라고 했으며 헌재가 결정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나라당을 주축으로 하는 언론법 개악 주도세력이 헌재 결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이들이 오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결국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야당이 헌재에 요구한 것은 지난 7월 22일 오후 제283회 국회 임시회의 제2차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부의장이 신문법안, 방송법안, IPTV 방송법안, 금용지주회사업안을 각각 가결 선포한 행위가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와 각 법률안에 대한 가결선포행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 심판이었다. 법률의 유, 무효 판단 청구 즉, 해당 법률의 위헌여부 판단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헌재는 신문법에 대하여 표결과정에서 대리투표 등으로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이 현저히 저하된 점을 인정하여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했다. 방송법에서는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투표를 실시하여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원칙을 위반함으로써 국회의장 등 피청구인의 위법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헌재는 권한의 침해에도 불구하고 가결선포 행위의 무효 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법률의 유효를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의미로 보면 법률 결정 절차상 흠결이 있으니 그 부분은 법률 결정권이 있는 국회가 다시 결정하여 위법을 해소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야당과 언론노조는 위법을 해소할 길은 언론법의 재논의 밖에 없으므로 피청구인으로서 국회의장이 위법해소에 나서야한다는 요구다.

▲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표결처리하는 모습 ⓒ미디어스

헌재의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의 수용행위는 오해 또는 의도적 곡해 등 극히 자기 방어적이다. 헌재가 가결선포행위 무효주장을 기각한 것을 법률의 유효로 해석한다. 국회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그로인해 법률을 무효로 할 만큼 위법이 중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을 끌어들인다. 대표적 인물로 홍준표와 진성호씨,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다. 홍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지만 그 정도 위법이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헌재가 결정했고 한나라당이 더는 문제 삼지 않았으므로 언론법의 헌재 결정에도 이제 그만 하라는 것이다. 진씨도 같은 예를 들며 처리절차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미디어법의 내용을 판결한 것이 아니므로 법안 내용을 바꾸는 재논의는 헌재 결정사항이 아니므로 가치 없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언론법 권한쟁의심판을 같은 비중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헌재의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정당해산, 탄핵심판 등은 위헌여부만 따지는 것이지만 권한쟁의심판은 위헌여부뿐 아니라 법률위반여부도 따지는 것으로 결정 정족수도 6인과 5인으로 각각 다르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언론법 권한쟁의심판을 같은 의미에서 해석하려면 야당이 헌재에 김형오 국회의장의 탄핵심판을 청구하든지, 한나라당의 해체를 요구할 때 비교가능한 일이다. 또한 위법성 해소에 있어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헌재 결정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있다. 김형오씨와 한나라당이 위법성 해소 회피 이유를 탄핵심판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또 하나 한나라당의 변명은 위법사실의 원인 제공자를 만들어 내거나 공동의 범죄 책임론이다. 야당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를 물리적으로 방해하여 무질서와 혼란 중에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것이었으며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을 헌재로 가져간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여야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진성호씨는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라’는 문구를 인용하여 야당의원들이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투표를 방해한 것은 유치원 아이만도 못하는 사람들이라 비난했다.

과연 그런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기 자리에 않아서 편히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의원들은 의장석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빈자리가 생겼고 이것이 투표방해 행위와 대리투표의 원인이 되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석 보호를 위해 자리를 비운행위는 정당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회의장에서 국회의장이나 의장석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 국회 사무처 경위들이 할 일이다. 오히려 의장석 보호 이유로 회의장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 국회 경위 업무방해 행위로 처벌받아야 한다. 유치원에서는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하도록 가르친다.

한나라당이 “단순하다”고 한 말은 오히려 야당과 시민사회에 한나라당이 위법을 해결해야할 극히 단순한 이유를 제시한다. 헌재는 청구인 조승수와 정세균외 88명의 권한쟁의 심판을 인용하여 피청구인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안상수 외 6인의 피청구인 보조참가인에게 국회법 절차의 위법을 해소하라고 단순한 명령을 했다. 그런대도 김형오 의장은 “미디어법 재개정 여부는 여야의 협상에 달린 것이지 국회의장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피청구인으로서 패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은 언론법 재개정, 재논의는 죽어도 못한다면 부정대리투표, 일사부재의 원칙의 위반 해소를 위한 재결정 방안이라도 내놓는 거짓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지난 9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미디어법의)헌재 판결이 민주당 쪽으로 나면 본회의에 다시 상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한적 있다.

#미디어법헌재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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