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 인용 결정된 직후 드디어 모든 일이 다 마무리 된 것 같았지만, 국민들 마음 속에는 아직도 걱정이 한가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동 자택에 대한 심상찮은 보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동 자택 주변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연일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극성스러운 행태를 보이며 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지나가는 중학생을 붙잡고 “기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쏠 수도 있다”는 등의 왜곡된 언론관을 설파하는가 하면 집회신고 문제를 두고 자기들끼리 서로 ‘좌파’라면서 싸우는 블랙코미디 같은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인근을 통학로로 하는 삼릉초등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안전에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학부모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의 집회를 금지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서울시교육청도 나서서 경찰에 조치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신고가 ‘서면’으로 접수되지 않았다며 집회 참가자들의 기행을 방치하던 경찰은 16일이 돼서야 새로 집회 신고를 내려는 단체에 금지통고를 내는 등 행동에 나섰다. 집회 참가자들도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좀 온건해졌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노르웨이 공영방송이 등장하는 걸 기점으로 이들은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다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 자체를 코미디라고 부르지 않을 재간이 없다.

16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으로 인근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사람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은 며칠에 걸쳐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이 보수단체의 간부들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고 전경련이 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정황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의혹이다. SBS는 이런 식의 협력이 탄핵 국면에도 꾸준히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관제시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인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좌파를 지원하는 것은 되고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냐며 SNS 등을 통해 당당히 항변했다. 검찰은 조만간 전경련 관계자들을 불러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경위를 조사하고 허현준 행정관을 소환한다는 입장이다.

관제시위 의혹과 함께 국민들을 또 다른 불안으로 몰고 가는 것은 청와대의 증거인멸 논란이다. 청와대가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4차례에 걸쳐 24대의 파쇄기를 추가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조달청의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인데 파쇄기를 구매한 날짜가 의미심장하다.

언론은 JTBC가 처음 최순실 씨의 태블릿PC를 보도한 다음날,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구속된 다음날, 특검이 제2의 최순실 씨 태블릿 PC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진 다음날,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이 나온 다음날 등에 청와대가 각각 6대의 문서 파쇄기를 구매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청와대와 행정자치부는 이 조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파쇄기들의 참여정부 때 구매한 것인데 사용연한이 11년이기 때문에 원래 교체하도록 돼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핸드폰을 전자렌지에 넣고 돌리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증거인멸 문건’이 등장한 바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실제로 증거인멸 혐의 역시 받고 있다. 이러니 국민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하고 있다. 17일 사설을 통해 “야권의 의혹 제기는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의 억측일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그간 거짓 해명을 한 적이 많은 데다 압수수색도 극구 거부한 터여서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구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6일 언론은 이영선,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 드나드는 광경을 포착했다. 두 사람은 현직 청와대 행정관의 신분으로 전직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이영선 행정관은 탄핵된 전직 대통령에게도 제공되는 경호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윤전추 행정관의 경우 연가를 낸 상태이며 곧 사표를 제출할 거라고 한다.

이들이 실제 담당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호 및 집안관리와 수행업무일 것으로 추측된다. 현직 행정관들이 전직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관계자들이라는 것도 쉽게 넘길 수는 없는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포함해서 사건 관계자들이 연일 한 집에 모여 무슨 모의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증거인멸’ 의혹 까지 제기된 판국이다.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방문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택을 거점으로 삼아 장기전에 돌입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해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직후 친박 핵심 의원들이 정무, 언론 대응, 법률지원, 수행 등 역할을 나눠 ‘진용’을 새로 꾸린 것으로부터 나왔다. 곧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될 전직 대통령의 행보로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불출마로 최대 수혜를 입으며 자유한국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를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칭했다. 같은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 화환을 보냈다가 기부 행위를 금지한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의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만 대변하는 정치를 선보인 것이다. 이러니 보수정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야권은 검찰의 청와대 및 삼성동 자택 압수수색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압수수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증거 수집이 중요한 목적인데 현재는 수사가 정점으로 가고 있다. 지금 압수수색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둔 상태에서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검찰의 이러한 입장에 대한 해석은 21일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어떤 혐의로 어떻게 기소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 수위를 떠나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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