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까?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여느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프로스포츠의 최종 목표는 돈이 되는 흥행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 점에 가장 노골적으로, 혹은 적나라하게 집중하는 분야는 WWE로 대표되는 미국 프로레슬링이다. 초창기 ‘실전’에 가까웠던 프로레슬링은 거의 한 시합이 반나절 이상 소요되는데다 관절기 위주의 경기 내용으로 팬들에게 시각적 쾌감을 주는데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프로레슬링은 스타성을 지닌 외모 위주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각본에 의한 빠르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취하기 시작했다. 시각적 자극을 줄 수 있는(그러나 실전에서는 효율적이지 않은) 호쾌한 기술이 자리 잡았고 거의 연속극 수준의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스포츠란 표현이 무색한 형태의 볼거리로 자리잡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진화의 방향은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시합을 만드는 흥행업자들이 대부분 승리했다. 1980년대 초반 전직 뮤지션이자 보디빌더 출신이었던 헐크 호간이 진정한 레슬러가 아니란 이유로 챔피언 타이틀을 넘기는 것을 꺼려했던 AWA가 그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라이벌 단체 WWF(현재의 WWE)에게 레슬링 업계의 주도권을 내주고 몰락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례다.

대놓고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미국 프로레슬링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전에 기반한 대부분의 종목들도 프로스포츠로서의 비즈니스적 고려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텔레비전 등 미디어 산업과 연동되어 스포츠 산업이 창출해내는 부가가치가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여전히 올림픽을 중심으로 아마추어 스포츠의 순수성을 선전하는 장치들이 강력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상당수의 스타급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거대 자본의 스폰서가 붙어있는 있는 환경에서 스포츠 정신의 순수성을 운운하는 것은 다소 낯간지러운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근대 스포츠는 출발부터 내셔널리즘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측면이 강력하게 잠복해온 셈이다.

스포츠 저널리즘의 발전도 근대 스포츠에게 주어졌던 객관적 상황의 산물이다. 스포츠 저널리즘의 전면적 상황을 몇 마디로 일괄하기는 어렵겠지만 거칠게 살피면 손쉽게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을 잡아낼 수는 있다. 바로 스타시스템의 적극적 활용과 라이벌리의 형성이다.

영화나 대중음악 등 연예 산업에서 먼저 시작된 스타시스템은 산업에 안정적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다.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스타시스템은 일차적으로 저널리즘을 통한다. 첫 번째 단계는 당연히 스타 탄생이다. 이 단계까지는 일관성이 높지 않다. 어려서부터 자기 연령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인 단계에서 성공을 예감하게 하는 준비된 예비 스타들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깜짝 스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최근의 예로 최근 미국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로브론 제임스를 꼽을 수 있겠다. 로브론은 2003년 프로무대에 등장했지만 이미 고교시절부터 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준비된 스타였다. 농구팬들이 로브론을 맞을 준비를 충분히 시킨 것이다. 안정적인 스타시스템으로의 진입이 가능하고 성공확률도 높은 방식이지만 가끔 선수의 기량이 미디어에 의해 다뤄진 것보다 못할 경우 팬들의 반발에 부딪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빨리 다른 선수를 대항마로 키운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최근의 양용은 같은 경우다. 예측이 불가능하며 오랜 검증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저널리즘은 일반적으로 이런 스타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타탄생에 이은 단계는 지루한 스타 울궈먹기다. 스포츠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는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도 매우 당연한 듯 이뤄진다. 여기서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저널리즘과 가까운 스타와 그렇지 못한 스타가 갈린다. 저널리즘 종사자들도 어차피 사람인지라 전자의 경우는 모범적 롤모델로 다뤄지지만 후자의 경우는 거만하고 이기적인 운동기계로 전락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은 상당 부분 실제 선수의 인격적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대중들이 접촉하는 스포츠 스타의 이미지는 대부분 저널리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개인이 극복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는 선수의 경기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전설’이 되는 경우다. 대부분 스포츠 스타들은 경기력의 저하와 더불어 저널리즘의 관심에서 벗어나지만 극소수 대단히 오랜 기간 최고의 캐리어를 기록했을 경우 레전드로 만들어진다. 레전드 단계로 접어들었을 경우 과거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던 선수라 하더라도 사면복권 되는 경우가 많다. 거만하고 이기적인 이미지의 선수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오해를 받았으나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는 진정한 승부사’로 거듭나는 단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모델로 한 새로운 스타발굴에 나선다. ‘제2의 XX’, ‘포스트 XX’가 숱하게 만들어지고 지워진다.

스타시스템과 함께 스포츠 저널리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라이벌 관계(라이벌리)의 적극적 활용이다. 사실 라이벌리의 활용은 스타시스템의 연장선에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6,70년대 미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단연 헤비급의 제왕 무하마드 알리였지만 그와 강력한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조 프레이저와 조지 포먼의 관계는 흥행성에 한층 추진력을 더해주었다. 라이벌리는 선수들 간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프로농구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라던가 프로야구에서 뉴욕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간의 관계와 같은 대도시(빅마켓) 팀들을 중심으로 한 라이벌리도 흥행의 중요한 카드다. 더 큰 흥행을 위해 빅마켓 팀들을 띄우기 위한 리그사무국의 입장은 리그 운영에서 은연 중 배어나기도 한다.

▲ 나지완 선수ⓒKIA타이거즈
이런 흥행위주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때때로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비교적 오랜 숙련을 통해 어느 정도 객관적 지표에 의한 저널리즘이 자리잡은 스포츠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인상비평에 머물러 있는 한국 스포츠 저널리즘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물론 한국 스포츠 저널은 이런 스포츠 내적인 것에 의한 비판을 떠나 스포츠 언론의 정체성 자체를 포기한 채 저열한 연예 가십 기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부 스포츠 스타들에게만 집중하는 편파성이나 기자가 경기를 봤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수준의 질 낮은 경기 리뷰, 해외 기사의 무단 도용 및 짜깁기의 문제는 꾸준히 팬들의 분노를 사왔다. 물론 박수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듯, 이런 편파적 스포츠 기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팬들이 의외로 많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 비즈니스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등장한 이후 팬들도 더 많은 객관적 정보와 시각을 갖고 스포츠를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이 이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언론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기아 타이거스가 거둔 성과는 스포츠 저널리즘의 입맛을 100% 충족시켜주는 성과였다. 타이거스는 전통적으로 라이온스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 발전기를 주도했던 전통의 강호였으며 트윈스, 자이언츠와 더불어 전통적 인기구단이기도 하다. 원래의 모기업인 해태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타이거스의 오랜 암흑기는 현재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트윈스의 부진과 최근에는 약간 회복세에 있지만 여전히 우승컵에 목마른 자이언츠의 부진과 함께 프로야구 흥행의 저해요인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타이거스보다 SK 와이번스를 응원했지만 소위 더 많은 ‘팬심’이 타이거스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또한 시합 결과 역시 매우 좋았고 승복할 수 있는 결과였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타이거스의 거친 힘에 와이번스의 섬세함이 당해내지 못했다. 나지완의 마지막 홈런과 채병룡은 눈물은 그런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미틱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나지완의 한국 시리즈 MVP가 합당한가? 그는 7경기 동안 2할 5푼의 타율에 2개의 홈런, 4타점을 올렸다. 반면 로페즈는 3경기에 출전하여 완봉승 포함하여 2승과 1.5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MVP는 로페즈다. 그러나 나지완을 MVP로 만드는 것이 한국 스포츠 저널리즘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이미 나지완은 한 방의 결정적 홈런으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에게 어색한 MVP타이틀을 덧씌워주는 것은 사족을 달아주는 것에 불과하며 엄연히 객관적 기록이 존재하는 종목의 특성을 무시하는 행위다. 깜짝 스타탄생의 효과를 노린 것이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불편한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대부분 타이거스 팬들도 “로페즈”를 연호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제 저널리즘에 일반 팬들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 한국 시리즈 MVP에 대한 논란은 고창성이 단지 9표에 그쳤던 신인왕 투표와 더불어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었다.

결국 장기적인, ‘지속가능한’ 흥행을 위해서는 스스로 객관성을 갖추고 권위 있는 공정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만 프로야구가 꽤 훌륭한 선수 자원을 갖추고도 3류 수준으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리그 환경의 저열함 때문이다.(스포츠 도박의 폐해가 심한 대만에서는 심판에 의해 조작되는 장난스런 경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치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사 하루 이틀 할 것 아니면 낡은 판을 갈아야 한다. 좋은 기자 한 두 명 나타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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