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의장석을 먼저 점거하면 불이익을 주겠다."(7월 20일 기자간담회)

"오늘 언론관계법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본회의 표결에 부치려 한다. 외롭고 불가피하게 내리게 된 오늘의 결단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7월 22일 성명)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7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을 지겠다. 대리투표는 어떤 경우든 용납될 수 없다."(7월 26일 '국회의장 입장')

"헌재가 미디어법 처리를 무효라고 판단할 경우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사)

사퇴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미디어법과 관련해 해온 발언들이다. 당시 그는 '국민과 역사'라는 거창한 말까지 거론하며, "책임지겠다"고 수차례 강조했었다. 대리투표 행위가 확인될 경우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 의장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나. 자신의 발언과 정반대로 '국민과 역사' 앞에서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형오 국회의장 ⓒ여의도통신
기자들 앞에서 "의장석을 먼저 점거하는 세력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던 그는 날치기 당일인 7월 22일 오전,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점거에 나서자 '불이익'이 아닌 '직권상정'이라는 큰 선물을 선사했다. 불과 이틀 전에 했던 발언은 후라이팬 위의 전처럼 아주 쉽게 뒤집혔다.

그밖에 "책임지겠다"는 발언은 어떻게 됐을까? 김 의장은 재투표, 대리투표 등 미디어법 처리의 위법성을 확인해준 헌재 결정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만 할 뿐이다. 야당의 사퇴요구는 "내 행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일축하고, "국회 재논의는 양당 원내대표가 협상하라"고 한다. 직권상정으로 미디어법 처리의 물꼬를 터준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잊은 것일까?

사실 직권상정을 하는 순간 김 의장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직권상정은 곧 '미디어법 통과'인데, 그렇게 되면 김 의장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김 의장은 직권상정 결단을 밝히며 "국민과 역사 앞에서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조중동방송/재벌방송 등 미디어법 현실화가 가져올 폐해가 국회의장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저 '국민과 역사' '불가피한 결단' '국회의장으로서의 책임'과 같은 레토릭으로 중립을 가장한 채 한나라당의 불법 날치기를 위한 탄탄대로를 터줬을 뿐이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김 의장에 대해 "여야간 숱한 '입법 전쟁' 와중에서 당적을 떠나 중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평가한다.

동아일보는 5일자 사설 <국회의장 조롱하는 저질 국회>에서 김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월급이 탐나서 그러느냐. 이런 국회의장과 같이 일한다는 게 창피하다"고 말한 야당에 대해 "국회의장을 조롱하는 행위다. 국회 수준이 부끄럽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민주당이 끝내 타협을 거부하자 국회법에 따른 처리 수순을 밟은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법이 날치기된 7월 22일 오전, 일방적으로 미디어법 여야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은 한나라당이다.

동아일보는 "미디어법의 재논의 요구도 억지"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헌재 결정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미디어법의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헌재 판결로 인해 재투표, 대리투표 등 미디어법 처리의 위법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부 재판관들은 야당의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하면서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위법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국회의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이강국 헌재소장, 이공현 재판관)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에 대한 사후 조치는 오직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해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김종대 재판관)고 판결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디어법 불법 처리의 물꼬를 터준 김 의장과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인 동아일보야말로 국민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막말이 아니다. 바로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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