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세상에서 유일할 것이다. 몇 달 전의 한 마디를 다시 인용하고, 그때 썼다가 지웠던 말을 오늘 다시 하는 등의 이어짐.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생물처럼 어떤 하루, 어떤 주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래에 할 말을 미리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보면 마치 그랬던 것처럼 과거의 말이 현재가 된 그 미래와 맞아떨어진다. 그 절묘한 우연 혹은 필연을 간혹 느끼게 된다.
3월 12일 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탄핵이 된 전직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도 참 특별했다. 굳이 해가 떨어지고 난 뒤에, 가까운 세종로를 피해 굳이 사직터널을 쪽을 택해 본래 살던 삼성동 자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앞까지 그냥 들어와도 될 것은 굳이 경호원들을 차량 주변에 배치하고 본인은 차 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실 물색없었던 것은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의 조기 귀가에 '환영'이란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웃었다. 본인 말고는 모든 이들을 당황케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치명적인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탄핵 당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청와대를 나와야 했던 전직 대통령이 자택에 도착해서 손을 흔들고 웃은 것만큼이나 충격이었다.
탄핵으로 더는 절망하고 분노할 일이 없기를 바란 시민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언행은 전혀 기대치 않은 도발이었다. 이 사람은 항상 그랬다. 한계치를 뛰어넘는 분노 유발의 능력을 보여 왔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이 불쾌감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날의 앵커브리핑은 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었던 태블릿피시를 보도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참 가슴에 와 닿았던 멘트였다.
“저희들의 마음 역시 어둡습니다. 뉴스와 절망을 함께 전한 것은 아닌가... 허락하신다면 마무리는 다음과 같이 하겠습니다. 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
맞다. 최순실 게이트의 일등공신인 JTBC <뉴스룸>이 전하는 모든 비정상의 비밀들은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모든 상상이, 상상 이상의 것들이 현실로 확인되는 그 참담했던 모든 순간들은 동시에 절망일 수밖에 없었다. 분노였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이 어떤 보도, 어떤 논평과 달리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을 뉴스 생산자 이전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시민의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그 감정들을 잊지 않고 함께 나누려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선동이 될까 무척 저어하면서도 저널리즘의 뒤에 숨지 않는, 펜을 내려놓고 가슴을 드러내는 그 진솔함.
3월 13일 월요일의 앵커브리핑도 아마 핵심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헌재에 불복하는 품위 없음도 아니고, 지지자 3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한 마디 애도의 말도 하지 않는 마른 성품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도 오히려 웃고 손을 흔드는 엉뚱함도 아니고, 그냥 비웃고만 싶은 너덜너덜한 감정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말이 공식적으로 화를 내지 않는다는 손석희로서는 최대한의 분노가 아니었을까 모를 일이다.
“유행어로까지 번졌던 '진실한 사람', 그는 '깊이 사과드린다'던 담화를 준비하던 그 밤마저 그의 친구와 열 번 이상을 통화하며 담화문 안에 담을 '진실'을 조율했던 모양입니다”
이 멘트 뒤에 손석희는 '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용기뿐이 아니던가…'라는 질문으로 앵커브리핑을 마쳤고, 이날의 엔딩 뮤직은 권진원의 <그대와 꽃 피운다>였지만 왠지 이효리의 <치티치티뱅뱅>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