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모 통해 바라본 촛불의 의미

<사건번호 2016헌나1>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사건번호이다. 3월 12일 방영된 <SBS 스페셜>은 탄핵안이 접수된 이래 92일 동안의 '국민들 마음의 심판' 과정을 들여다본다. 특히 다큐는 이른바 '박사모'라 지칭되는, 탄핵안이 가결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4%, 그리고 탄핵안이 기각되기를 바랐던 15%의 마음과 생각의 행로를 짚어보고자 한다. 왜 하필 이들이었을까? 이들의 생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다큐가 증명하듯이, 광장을 밝힌 촛불의 의미이다. 즉 진부하다 생각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이며 과제가 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성장통’이다.

박정희 왕가의 신민들

다큐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그중 대구에 갈 때마다 빠짐없이 찾았던, 심지어 지난 11월 30일 서문시장에 불이 나자 탄핵 논란 와중에도 찾았던(물론 그 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겉치레식이라 시장 상인들의 반발을 샀지만) 서문시장이다. 서문시장에서 1975년부터 국숫집을 해온 74살의 김숙연 할머니, 대선 과정에서 할머니의 응원이 동영상으로 제작될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던 할머니는 박근혜를 사랑했다. 박근혜와 포옹했던 감촉조차 잊지 않았다. 그랬던 할머니였기에 지금의 이 사태가 할머니를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또 다른 74살의 라종임 할머니는 박사모 집회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밥상머리 자식들과 설전에서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각종 음모론과 삐라 수준의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대통령 박근혜 지키기에 열을 올린다.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투표를 강력히 독려하는 건 물론이다. 자신에게 전달된 박근혜 탄핵과 관련된 음모론을 유포하느라 밤을 새우는 김철영씨(73)와 임영택(62)씨 역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근혜를 사수해야 한다 주장한다. 이 모든 사태에는 북의 지령을 받은 촛불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굳게 믿으며, 법과 언론을 의심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선동하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

김숙연, 라종임, 김철영, 임영택 씨 등 이들에게 박근혜는 그저 국민들이 뽑은 한 사람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12살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청와대에 들어간 영애이자, 아버지 어머니를 잃은 불쌍한 딸이었고, 결국 자신의 집을 되찾은 공주였다. 그렇게 41년을 박근혜를 봐왔다. 그리고 그 41년은 박정희로 인해 도로가 만들어지고 수출이 잘되었던 '부국'의 세월이었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장기집권한 독재자가 아니라 ‘왕’이었고, 박근혜는 그 왕의 딸로 당연히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충성하는 것은 '백성'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탄핵'이라니 청천벽력이다. 아랫사람이 잘못했다고 왕을 내치는 법을 없다부터,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동정론까지 구구절절 토를 달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박정희 왕가'의 붕괴에 대한 분노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알맹이는 '너네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과 가난을 겪은 세대의 '자기 동일시'이자 '자아 분열'이다.

그들에게 박근혜의 몰락은 그들이 살아온 박정희 왕조의 붕괴요, 자신들이 살아왔던 시대와 가치관의 부정이요, 이제는 넘겨주어야 할 '생'의 주도권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결국 탄핵이 기각되기를 바랐다. 자신들이 해왔던 바의 삶의 방식과 체제를 후손들이 연민을 가지고 '눈 감아주기를' 바란다.

촛불=민주주의 혁명

하지만 후손들은 연민 대신 촛불을 들었다. 라종임 씨네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들과 딸은 입을 모아 말한다. 대통령의 딸이니까 왕가의 자손을 운운하는 어머니의 말씀 따윈 귓등으로 넘겨 버리고, 선출직 대통령, 그 대통령이 자신의 할 일을 다하지 못했을 때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탄핵'을 주장한다. 어머니가 박사모 집회에 나선 날, 마흔 두 살의 딸은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국가, 하지만 그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박사모'와 '촛불'로 나뉘듯이 갈라진다.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전히 왕조국가 속의 신민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국가의 붕괴라 생각하며 아노미를 겪는 사람들은 박정희 왕조의 마지막 ‘신민들’이다. 그들의 귀에 박 전 대통령으로 인해 벌어진 국정농단 참사는 모조리 '음모요, 북의 지령'일 뿐이다.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난 혼자 살겠다고 내뺀 초대 대통령. 그 대통령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버리고 간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북에 협조할 수밖에 없던 시민들을 빨갱이 앞잡이로 몰았다. 그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씨 왕가의 시조는 자신이 했던 좌익 활동에 제 발이 저려 자신의 친구조차 빨갱이로 몰아 고문을 했다. 그렇게 정권의 이해로 시작된 빨갱이 몰이는 몇십년의 세월을 거쳐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신민'으로 만들고, 조작된 신념의 신봉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씨와 박씨가 만든 '반공주의' 왕조는 2017년에도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주의에 입각하여,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15%의 그림자가 되어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는다.

3월 12일 방영된 <SBS 스페셜- 사건번호 2016헌나1>은 그저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우리 사회 세대간 갈등 보고서가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미완성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그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여전히 왕조시대의 신민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세대에 대하여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는 것을 되짚는다. 박사모의 이야기를 전하면 전할수록 촛불의 정당성이 밝혀지는, 그래서 탄핵의 당위성이 드러나는 <사건번호 2016헌나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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