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판결이다. 이러한 정치적 판결은 헌법재판소 스스로 존립 근거를 뒤엎는 것으로, 우려스럽다.” (임지봉 교수)

헌법재판소의 언론관련법(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청구에 대한 선고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와 한나라당, 방송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또 인터넷에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패러디한 “술은 먹었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 “녹색성장을 하겠지만 그린벨트는 해제한다” “임기는 보장하겠지만 사퇴압력은 넣겠다”는 식의 댓글 놀이가 유행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는 이번 결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지난 28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언론법 처리 과정이 국회법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고 재투표와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출되었고, 적어도 과거에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이 난 판례가 있었기에 국회법 위반 결정은 나오리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법률안 가결 선포 행위가 위헌, 즉 무효라고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다음날 29일, 임 교수의 예언(?)대로 헌법재판소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에 대한 무효확인청구에 대해서는 기각을 결정해 사실상 법안이 ‘유효’라는 점을 인정했다.

▲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 ⓒ임지봉 교수 홈페이지
임 교수는 30일 <미디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정치적 판결’로 법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판결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위법성을 지적해서 야당 쪽 손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결과적으로 무효선언을 하지 않아 여당 쪽 손을 들어준 것과도 같은 애매한 판결”이라며 “여야 어느 쪽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한 면피성 판결이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판결”이라며 “헌법재판소가 다수 의견으로 ‘일사부재의 원칙’을 비롯해 국회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국회의장의 의사진행권 행사로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까지 이야기했음에도 명백한 위법, 중대한 위법은 아니라고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법 위반 사례가 있었음에도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법적으로 설득력이 없다”며 국회법과 헌법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국회법은 모법인 헌법의 원리를 구체화하고 있는 하위 법안이다. 헌법재판소가 위반했다고 인정한 일사부재의 원칙과 심의·표결에 관한 원칙 등은 헌법상 기본인 ‘의회민주주의’ 적법절차조항 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국회법은 이러한 부분을 구체화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헌법의 기본 원리 조항을 위반한 것을 두고 중대한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건가? 무효되는 것이 법리상 자연스럽다.”

“헌법재판소, 법적 판단 아닌 정치적 판단”

그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법적 판단이냐 묻는다면 고개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헌법재판소 스스로 위반이라는 점을 인정해놓고 법리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결정한 것은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헌법재판소의 존립근거는 정치적, 헌법적 분쟁이 있을 때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려하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 스스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게 좋지만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헌법재판소가 법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헌법재한소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은 스스로 존립이유를 뒤엎는 것으로 우려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법 가결선포행위가 ‘무효’인지 여부를 두고, 기각을 주장하는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가 원칙적으로 권한이 침해 받았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할 뿐 이에 대한 시정은 피청구인, 즉 김형오 의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률안 가결선포행위 효력에 대한 사후 조치는 오직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 등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선을 그었다.

그는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직무를 스스로 유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회를 향해 ‘침해한 것 같으니 알아서 해결해라’고 하는 것은 판결이 아니라 견해표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 논리라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필요가 없다. 헌법재판소가 권한 침해를 확인한 뒤 판단해야 하는데 위법은 위법인데 위헌은 아니라는 것은 권한침해는 있었으나 유효인지 무효인지 판단하지 않고 ‘위법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는 식의 판결이다. 헌법재판소는 위법, 위헌적 권한 침해를 해석해 결정해야 한다.”

▲ 헌법재판소가 10월29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언론법 등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그는 “판결문을 보면 국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언론법을 국회로 공을 넘긴다는 것 같다. 국회의 자율권은 법적 규정이 아니지만 헌법재판소가 위법으로 인정한 그 부분은 국회법 규정에 있는 사안”이라며 “이번 헌재의 판결은 삼권분립, 최고의 사법기관에 부여된 존재권을 스스로 던져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권한쟁의심판과 관련한 법 조항에는 피청구인(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위법 부분에 대해 위법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는 부분은 없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주문에서 위법이라는 점을 인정한 만큼, ‘헌법상 문제를 치유하는 조치를 취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판결문과 관련해서도 “판결문 누가 보더라도 어떻게 하라는 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하는 등 명백하고 간명해야 한다”며 “그런데 권한 침해는 했으나 무효가 아니라고 하는 등 법적으로 안 맞는 결정은 내렸다. 이번 판결은 판결문을 보고도 법률가들의 해석이 분분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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