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21일) 조선일보 1면을 보면 조선일보의 ‘고민’이 읽힌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이슈로 떠오른 ‘BBK 김경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조선일보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 모양이다. 정면돌파가 아니라 일단 한발짝 떨어져 흐름을 보는 모양새다.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21일(한국시각) 새벽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간에 작성된 이면계약서를 공개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상황에서 조선은 <김경준씨 변호인이 돌연 사임> 했다는 것을 1면에 배치했다. 검찰 수사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계기와 대선 정국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 좀 생뚱맞다. 이 ‘생뚱맞음’은 <후보등록 D-4 여다야다>라는 머리기사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다 아는 얘기를 난데없이 1면 머리로 올리는 조선. 고민이 참 많은 것 같다.

▲ 조선일보 11월21일자 1면.
조선, 1면에서 ‘논점’ 흐리고 사설에선 ‘속내’ 드러내고

그런데 속내까지 숨길 수는 없었나보다. 조선은 사설 <대선, 사기범 앞에서 올 스톱>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답답하다고 한다.

“어쩌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이런 남매의 손에 놀아나게 됐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오늘로 대선 후보 등록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모든 정당, 모든 대선 후보들이 사실상 선거 운동을 접고 사기·횡령범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처지다. 이제 이 난장판에 앞으로 같은 혐의의 누나까지 가세할 모양이다. 후진국 중 후진국의 대선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답답할 따름이다.”

▲ 조선일보 11월21일자 사설.
동아일보의 경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공방위주의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내가 뻔히 보인다. 동아는 에리카 김씨와 이명박 후보 측의 입장을 ‘공방 형식’으로 편집해서 1면에 배치한 다음 5면에선 김경준씨의 이면계약서의 진위 여부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형식은 공방인데 속내는 공방이 아니다. 같은 면(5면)에서 <한나라 “자신 있다면 왜 해외서 공개하나”>와 같은 부제를 뽑은 것도 그렇고, <김경준 누나 에리카 김은 / 문서위조 등 4개 유죄혐의 미서 변호사 자격 정지돼>라는 상자기사를 바로 옆에 배치한 것도 그렇다.

대다수 언론, 삼성 ‘뇌물’ 의혹 애써 ‘외면’

‘BBK 김경준’ 못지 않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또 하나의 최대이슈는 이른바 ‘삼성 뇌물’ 파문이다.

▲ 경향신문 11월21일자 2면.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변호사)이 지난 2004년 청와대 재직 시절 삼성전자 법무팀으로부터 뇌물(현금 5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일이 있다고 ‘고백’한 이후 파문이 확산되는 양상인데, 오늘자(21일) 아침신문들은 ‘파문 확산’이 아니라 ‘확산 막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변호사가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제기한 의혹이 있고, MBC가 김용철 변호사 인터뷰를 통해 이를 확인하는 주장을 했는데도 이 사안은 잠잠하다. 이들의 의혹제기를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삼성측이 전달하려 한 돈다발 종이띠에는 ‘서울은행(현 하나은행) 분당지점’이라고 인쇄돼 있는데 서울은행은 2002년 12월 하나은행에 합병됐다. 이 말은 이경훈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현금 500만원을 인출해 1년 가까이 보관하다 보냈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삼성물산은 분당 서현동 삼성플라자빌딩에 있고, 서울은행 분당지점은 하나은행으로 이름만 바뀐 채 삼성플라자 바로 뒷편에 있다. 서울은행 분당지점은 삼성물산 비자금을 관리하는 은행 중 하나였으며, 하나은행 합병 뒤에도 삼성물산과의 관계는 계속됐다.

하지만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하고 나머지 신문들은 대부분 삼성 관련 사안을 지면 후반에 배치했다. 특히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용철 변호사 기자회견보다는 검찰의 삼성특별수사본부 ‘방침’을 더 주요하게 다뤘으며 삼성과의 ‘특수관계’인 중앙일보는 12면 맨 하단에 기사를 배치했다.

▲ 중앙일보 11월21일자 12면.
국민일보 <“삼성 비자금중 일부 내게 온듯”>(8면/4단)
동아일보 <이 전비서관 “돈다발 ‘이용철(5)’ 쪽지 회사 개입 증거/삼성그룹측 “이변호사와 연락안돼 사실 확인 못해”>(12면/3단)
서울신문 <“대선비자금 남은 돈 내게 보낸듯”>(4면 2단)
세계일보 <경영권 승계·비자금·로비 세갈래 추적>(11면 4단)
조선일보 <“상자에 내 이름과 숫자 ‘5’ 메모…개인적인 뇌물이라면 붙였겠나>(10면 상자)
중앙일보 <“삼성이 관리차원서 내게 돈 건네 / 돈 받았을 땐 용기 안나 공개 못해>(12면 3단)
한국일보 <“삼성 비자금 중 일부가 내게 온 것”>(8면 4단)

상황은 분명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밀물인 데 대다수 신문은 썰물이라고 항변하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이 오늘자(21일) 지면에서 청와대-삼성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수신문의 ‘침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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