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말하는대로> 시즌1이 24회로 마무리되었다. 먹방과 여행 예능의 홍수 속에서 ‘말로 하는 버스킹(busking)'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시도했던 이 예능은 마지막 24회 2.688%(닐슨 코리아)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말하는대로>를 시청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드러나는 시청률이라는 지표보다, 페이스북 등으로 퍼날러진 출연자의 10분여의 짤막한 동영상이 종종 조회수 10만을 넘긴 데서 알 수 있듯, '젊은 층'의 열광적인 호응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왜 그토록 <말하는대로>에 출연한 동시대인의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일까?

이국종의 직업 정신, 그리고 동변상련

24회 마지막 출연자는 중증 외상진료센터를 이끄는 이국종 교수, '심쿵' 역사 선생님 심용환씨, 최근 <복면가왕>을 통해 화제가 된 배우 박진주씨이다.

JTBC <말하는대로>

처음 마이크를 잡은 이국종 교수는 예의 포커페이스인 무표정으로, 이제는 거의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우리의 중증 외상의료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펴간다. 아덴만의 영웅이라 했던 석 선장님 치료를 통해 우리 사회에 중증외상센터의 존재 이유를 제기했던 의사, 그리고 드라마 <골든타임>과 <낭만닥터 김사부>의 모델이 된 인물. 하지만 이국종 교수는 '영웅'의 칭호를 기꺼이 내려놓는다. 오히려 당시 석 선장님 말고도 작전에 참여한 다수의 군인들이 외상을 입었고, 아직도 몸 속에 총알을 지닌 채 여전히 작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저 '직업'으로서 자신의 일로 한 발 물러선다. 특히 외과의로서 마지막까지 의료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는 그의 희망은 그 어떤 멋진 문구보다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사영 영리 병원들, 그 속에 산업현장에서 다친 중증 외상 환자들을 위한 재원과 공간은 마련되지 않는다고 말을 잇는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암센터'를 먼저 지어야 하는 병원,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을 줄이는 대신 번드르르한 외관에 돈을 퍼붓는 병원,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외상 센터의 자리는 점점 없어진다며 담담하게 현실을 읊는다. 그런데 이국종 교수의 발언에서 주목할 지점은 그의 마무리 발언이다. 당연히도 자신의 중증 외상 분야에 대한 강조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발언은, 국회의원의 질타에 이은 이국종 교수 자신의 '자각'으로 마무리된다. 세상에 자신의 분야만 가장 어렵고 힘든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세상엔 자기 분야만큼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더라는.

어쩌면 요식 행위 같은 이 마무리 발언이 바로 <말하는대로>가 몇 %의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공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매력, 요인이 아니었을까? 일찍이 ‘청춘 콘서트’를 시작으로 젊은이들과 우리 사회에서 나름 성공했다는 멘토들의 소통이 시도되었다. 오늘날 안철수 후보를 대통령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청춘 콘서트'에서의 열광적인 호응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멘토와 멘토링이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고, '아프니까 청춘'들에게 '멘토'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박진주의 솔직한 토로, 그리고 공감

JTBC <말하는대로>

하지만 세상은, 그중에서도 특히 청춘들의 삶은 덕담으로는 위로도 해결도 안 되는 지경으로 자꾸 몰려만 간다. 그 가운데 등장한 <말하는대로>, <김제동의 톡투유- 걱정말아요 그대>는 지금까지의 멘토링이란 힘조차도 뺀 채 있는 그대로 '괜찮다'며 다가왔다. 한 술 더 떠서, '아프냐? 나도 아팠다, 아픈 게 당연하다'며 소통하고 등을 두들겨 줬다. 3월 8일 방송의 마지막 버스커 박진주가 그 대표적인 예다. 늘 밝고 활발한 그녀의 캐릭터. 하지만 청중 앞에 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자신이 그동안 상처받기 싫어서 밝은 척 했었다는,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는 상처가 곪아터지고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 환한 얼굴 속에 숨겨져 있던 그림자를 토로하자 뜻밖에도 청중석에서 반응이 온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잘 안 풀려 죽고 싶을 정돈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렇게 지난 24회 동안 안희정, 이재명 등 이제는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들부터 서장훈, 김제동, 허성태 등의 연예인, 이종범 등 웹툰 작가, 오찬호, 심용환 씨 등의 학자, 박준영 변호사 등 사회 각층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난 이렇게 성공했네'가 아니라, 나도 지금의 너희들처럼 힘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마흔 줄이 되어서야 꿈을 찾은 허성태씨도, 은퇴의 그날까지도 더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는 서장훈도, 그건 곧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자아'로 투영되며 환호를 받았다.

심용환의 진짜 교육

JTBC <말하는대로>

물론 늘 '자신들의 이야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방송의 심용환 선생님처럼, 이제는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위안부의 이야기,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혹은 안다고 했던, 때로는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들고 나와 머리와 가슴을 울린다. 위안부 이야기는 잘 안다 했지만, 그 분들의 이야기가 해방 40년이 지난 91년에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성의 촉구라던가, 여전히 시인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조목조목 분명한 근거와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타당성까지 다시 한번 정확하게 짚어준 '역사 교육'은 어느 학교 교실에서도 배울 수 없는 진짜배기 교육이었다. 이런 '진짜' 그리고 꼭 필요한 교육들을 사회 심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여 <말하는대로>는 꾸준히 이어왔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감과 지식, 그리고 소통이 충만했던 시간. 24부의 길지 않은 시간은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이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예능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다. 마지막 시간 유희열은 '뜨거운 안녕'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스스로 고갈되기 전 깔끔하게 마무리 된 시즌1, 시간이 지나 새로운 공감과 교육의 아이템을 가지고 뜨겁게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