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질 조기대선 구도에 대해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 보도로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충격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이었다.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지지 기반을 거의 상실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를 기록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검사가 가동되고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로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넘겨지는 수순을 걸었다.

▲지난해 11월 1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 모습. (연합뉴스)

거리의 시민들은 '정권교체'를 외치며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일순간에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제1야당의 대표 대선주자에게 투영된 결과다. 문 전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선 독주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모 정당 관계자는 "마치 2007년 대선 때 민주당의 상황과 같다"면서 "뭘 해도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권교체'에서 '정책대결'로

이같은 상황에서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은 정권교체에서 정책대결로 프레임이 옮겨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의 분노가 탄핵 이후에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어떤 후보가 얼마나 잘 청산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모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압도적인 1위 후보 문재인 캠프가 규모에 비해 정책을 내놓는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정책대결이 경쟁 관계에 들어설 공간이 충분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왼쪽)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정책적으로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후보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시장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사회'를 외치며 지지층을 끌어 모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가 한국사회에 고질적으로 관례화된 인맥과 정경유착 등과 관련이 크다는 것도 이 시장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시장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비롯해 부패 기득권 척결, 청년 일자리, 노동, 대학, 성 평등, 다문화 관련 등 각종 정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국민의당 후보들도 재조명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후보들의 경우 제2야당으로 정권교체 프레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학제개편을 중심으로 한 교육 정책을 시작으로 청년고용 보장계획, 고용상황평가제·성평등임금공시제 도입, 창업,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과학기술진흥 등을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경제개혁정책의 일환으로 평민만세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7일에는 한미 군 당국의 사드 배치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평민만세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정책을 내놨다.

김종인, 3지대 빅텐트 만들어낼까

대선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변수도 존재한다. 먼저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탈당이다. 대표적인 개헌파로 분류되는 김종인 전 대표는 8일 탈당계를 제출해 민주당 탈당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 전 대표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와 개헌에 대한 민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이유로 민주당을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전 대표의 탈당으로 탄핵 이후 3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태풍이 몰아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김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를 '포퓰리즘'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여전히 경제민주화는 매력적인 정책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9일 바른정당 대권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이미 유 의원과 정운찬 전 총리와 함께 경제문제에 대한 토론을 벌인 바 있다. 10일에는 남경필 경기지사를 만나 오찬 회동을 할 예정이다. 남 지사의 경우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개헌을 축으로 한 3지대 빅텐트론이 가시화될 수 있다. 개헌에 경제민주화의 옷을 어떻게 입히냐에 따라 3지대 빅텐트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김종인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탈당할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9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8일 민주당 소속 최명길 의원은 "탄핵 이후 당 지도부와 문재인 후보 등이 개헌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3월 20일 이후 1차 탈당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저를 포함한 5~6명의 의원이 의견을 모았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것으로 개헌 일정 당론을 정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개헌안 마련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1차 탈당 후보자로 진영, 이언주 의원 등을 거론했다.

최명길 의원은 "조기 대선이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개헌을 못 한다는 특정 세력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면서 "민주당을 뺀 모든 정당이 자체 개헌안을 만들었고, 노력하면 조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탈당을 하게 되면 빠르게 150명 의원 서명을 받아 개헌안을 제안할 것"이라면서 "국민의당도 이 같은 새로운 세력 구축 논의에 함께 해 단일 대선 후보를 뽑는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3지대 빅텐트론이 다시 힘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홍준표 경남지사.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유당은 가장 많은 대선주자가 난립하고 있지만 홍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지지층이 홍 지사에게 결집되고 있다. 당원권 정지 상태인 홍 지사는 9일 자유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당비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대선 출마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홍 지사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정치적 판단이 서면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출마는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황 대행은 박근혜 정권의 2인자로서의 국정농단 책임론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황 대행의 대선 출마는 어디까지나 목전의 당선보다는 차차기를 위한 포석에 가까울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