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WTO 제소 등의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오산 미군기지에 전개된 사드 체계 일부. (연합뉴스)

사드 포대 일부가 전개된 직후인 지난 7일 정부와 자유한국당은 당정협의에서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WTO 제소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현재 자유당 정책위의장은 "WTO 제소 문제는 한중 FTA 위반이라든지 등을 적극 검토하고, 또한 국내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노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실효성이 없는 '면피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SBS 라디오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에 출연한 송기호 변호사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 부당한 것은 맞다"면서도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WTO 제소로는 사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송기호 변호사는 WTO 제소가 사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로 ▲WTO 협정 자체에 자국의 안보에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조치는 예외 ▲WTO 성격상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더 매기는 정도라는 점 ▲형식적으로 중국의 사드 보복이 국내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송기호 변호사는 "WTO, 한중 FTA, 한미FTA 자체에 이미 안보 관련 이슈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돼 있는 것을 전부 다 알 것"이라면서 "WTO 같은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수단을 거론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WTO가 제소를 받아들여 한국이 승소를 해도 문제다. WTO 분쟁해결 양해 규정에 따라 제소를 해도 판결과 이행절차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WTO 제소는 1심 최대 1년 6개월, 2심 최대 1년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이 승소해도 WTO에는 패소국에 대한 합리적 이행기간을 1년~1년 6개월로 정하고 있어, 최대 4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또한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 문제 등과 관련 다른 국가들과의 WTO 소송 경험이 수 차례 있고, 제재 범위와 입증 가능성 등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WTO 제재 검토와 같은 대응은 전혀 의미가 없다.

정부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WTO 제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7일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향후 어떤 상황이 도래 했을 때 법적 조치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정부, 민간, 지방정부의 조치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WTO 위반 여부를)실무적으로 들여다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다만 어떤 조치가 WTO 제소 대상이 되려면 '정부가 취한 명시적 조치'라는 것이 밝혀져야 하는데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면서 "부당해 보이는데 그게 WTO 어떤 조항 위반인지 딱 짚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부도 WTO 제소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한 달을 겨우 넘긴 시점에서 또 다시 WTO 제소를 운운하는 것이 결국 국내 정치를 위한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3일 고위당정회의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드 배치가 본격화 되면서 중국 측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 측의 조치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대책을 적시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사드가 전개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랭하고 있는 상황에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은 고사하고 WTO 제소 검토와 같은 실효성 없는 조치만 내놓은 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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