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했다. 정말 그 정도로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이 그저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또 위안부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작할 때는 그냥 <말하는대로>였다가 끝날 때는 시즌1이 됐다는 것은 성공을 의미한다. 작년 9월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더 컸던, 어쩌면 비웃음도 적지 않았던 토크 버스킹 <말하는대로>는 JTBC 예능국이 거둔 또 하나의 쾌거였다.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고, 만들어가겠다는 무모할 정도의 배짱과 창의성이 빛난 결과였다.

그런 <말하는대로>의 성공의 배경에는 촛불광장의 영향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오랫동안 참았거나 혹은 온라인상에서나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을 비로소 광장에서 말하고 듣는 것이 주는 짜릿하고 후련한 소통의 쾌감을 찾았고, 그 여세를 몰아 개인기도 아니고, 가십도 아니고 명색에 예능이라면서 세상 진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누군가는 열심히 들어주는 <말하는대로>에 시선이 쏠렸을 것이다.

JTBC <말하는대로>

광장이 아무리 뜨거워도,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상한 미디어 천국. 공영이고 공용이어야 할 미디어가 절대 다수의 의도를 배격하고는 셀프감금하는 미디어. 세상이 엄청나게 바뀐 것 같지만 방송만 보자면 그 변화는 너무도 미미하다. 그 변화를 그나마 피부를 느낄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한다면 JTBC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겠다는 듯이 <말하는대로> 시즌1의 문을 닫는 마지막 방송 출연자들이 전하는 주제들은 매우 묵직했다. 역사강사 심용환, 드라마 <골든타임>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 그리고 맛깔 나는 욕쟁이 처자 배우 박진주가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역사강사 심용환의 위안부 문제 강연이 던지는 의미가 매우 컸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로 처음 세상에 알려지고 지금까지 기나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는 느닷없는 일본과의 합의를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이어진 정부의 태도는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위안부 문제를 공동의 아픔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JTBC <말하는대로>

심용환이 말하는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런데 위안부에 관한 명연설에 포함시켜도 될 정도로 대단히 정리를 잘하고, 그 진정성도 뜨겁게 담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에 의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11개국에 대한 전쟁범죄이자, 성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가해자인 일본을 규탄하는 일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문제가 있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고백은 1991년. 해방년도인 1945년과 꽤나 긴 공백이 존재한다. 그러는 동안 위안부로 끌려갔다 돌아온 소녀들의 삶은 방치되었다. 일본군에게 속거나 강제로 끌려갔던 소녀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돌아왔다고 살아왔다고 진짜 돌아온 것이 아니었고, 산 것도 아니었다.

소녀들은 고국에 돌아와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무려 45년이 지나도록 말이다. 남성위주의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위안부 문제는 그저 개인적인 불행으로 치부된 것이다. 그만큼 각박했거나 무지했을 것이다. 심용환은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품격 있는 사회라고 했다. 백번 공감하는 말이다.

JTBC <말하는대로>

공교롭게도 같은 날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는 한 언론학자의 글을 인용했다. 정확히는 단테의 신곡의 한 구절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또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어떤 유태인 과학자도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내려 애쓴 것이기도 하다.

신곡의 부분은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인용을 포함한 전체 문장이 훨씬 더 멋지다. “광장에 넘쳤던 우정과 배려, 자존과 긍지, 정의와 희망의 순간들은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덕과 지를 따려고 일어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질 것이다.(정은령)” 이 말을 <말하는대로>에게 해줘도 좋을 것 같다. 아니 이 예능에 함께 공감한 시청자에게 더 적합하다. 그만큼을 해서가 아니라 또 시즌2의 지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는 아직 더 뜨거워져도 좋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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