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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세상을 바꿔 온 여성들의 날[오늘보다]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노조페미니즘팀 | 승인 2017.03.08 11:13

추위에도 흔들림 없이 촛불을 들던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106주년이 코앞이다. 언젠가부터 여성의 날에 온갖 국가기관과 기업들이 나서서 여성들을 위하겠다며 큰소리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간 세계 여성의 날은 권력자들을 벌벌 떨게 하는 위력적인 투쟁의 날이었다. 

삽화: 최설(출처 오늘보다)

‘빵과 장미’의 날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정치조직과 노조조직 등에 관한 의견 일치의 표시로서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 여성들은 해마다 여성의 날을 개최할 것.” 

독일의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은 1910년 제2인터내셔널 제2차 코펜하겐 국제노동여성회의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11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이 기념됐다.  

그 배경에는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성공적인 투쟁이 있었다. 1908년 3월 8일 뉴욕의 의류·섬유 산업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성별 임금 격차 해소(‘빵’),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표할 권리(‘장미’)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 투쟁은 1909년 ‘2만 인의 반란’으로 알려진 14주 파업, 그보다도 더 큰 1910년 ‘위대한 반란’으로 이어진다. “천천히 굶어죽느니 지금 굶어죽겠다”는 구호를 걸고 싸운 여성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쟁취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과 이주노동자는 조직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노동자운동의 편견을 깨고 국제여성의류노조(ILGWU) 등 여성노동자 조직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킨다. 

혁명의 도화선

1917년 러시아의 2월 혁명(1917년 3월 8일은 러시아력으로는 2월 23일이었다)을 연 것도 당시 수도인 페트로그라드 여성노동자들의 여성의 날 시위와 총파업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고, 농민들은 식량난에 시달리고 전선의 병사들은 무수히 목숨을 잃고 있었다. 전쟁의 종식, 식량난 해결, 제정(帝政)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물결에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를 비롯한 수십 만 명이 합류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확대됐다. 병사들은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감옥의 정치범들을 해방시켰다. 

결국 제정 러시아는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된다. 같은 해 발생한 10월 혁명은 이전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러시아 여성은 투표권과 이혼의 자유, 유급 출산 휴가를 얻었다. 여성의 학습과 노동 기회가 대폭 늘어났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취업차별 철폐를 원칙으로 삼았다.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없애고 국가의 양육 책임을 목표로 삼았다. 공동 주거, 공동 식당, 탁아소, 유치원 등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빈곤과 전쟁에 맞선 대안세계화 운동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이 세계의 여성의 삶을 공격할 때, 2000년 3월 8일을 계기로 퀘벡여성연맹(FFQ)을 중심으로 세계여성행진(WMW)이 조직된다. 1995년 캐나다 퀘벡에서 진행된 ‘빵과 장미’ 행진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산된 결과였다. 세계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양산하는 빈곤과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큰 빈곤과 폭력에 내몰리는 현실에 주목했다. 

이는 2005년 3월 8일에는 여성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의 기본원리를 담은 ‘세계 여성 헌장’을 발표하고, 10월 17일 세계 빈곤 철폐의 날까지 상파울로에서 부르키나파소까지 릴레이 행진을 했다.

한국을 포함해 164개 국 6000여 개 단체가 참여한 세계여성행진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했다. 나아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오늘보다》 2016년 12월호, ‘세계여성행진,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참조) 

청소노동자 행진에 참가 중인 노동자들(사진 출처=오늘보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2011년 3월 8일, 고려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화여대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연세대학교에서 파업 대회를 열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2011년 새해 벽두부터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승리한 직후였다. 밥 먹을 휴게공간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 최저임금 인생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 점점 확대되고 있었다. 

이 투쟁을 상징하는 모습은 빗자루를 든 중년의 여성노동자였다. 그들은 “이 나이의 여자가 일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청소노동을 하고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무시 받고 있었다. 이전까지 노동자운동의 시야에서도 벗어나 있었지만. 청소노동자들의 빗자루 질이 멈추자 서울의 대학 캠퍼스들은 난장판이 됐다. 파업은 이들이 그냥 지나쳐도 되는 ‘유령’이 아님을 증명했다. 

2017년 3월 8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

이처럼 해마다 여성의 날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는데, 올해 주목할 행사로 ‘3시 STOP’이 있다. 민주노총과 여러 단체들은 2017년 3월 8일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 STOP’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OECD가 조사를 시작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7년 연속으로 성별 임금격차 1위(2016년 36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로시간에 반영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는 무급노동인 셈이다. 3시 STOP행동은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3시에 일손을 놓자는 것이다. 생소한 기획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성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여성 파업을 조직한 경험은 이미 세계 곳곳에 있다. 

모든 것을 바꾼 아이슬란드의 하루 파업

시작은 아이슬란드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75년 10월 24일, 임금·고용에서의 성차별을 깨기 위한 ‘하루 파업’이 진행됐다. 이 행동에는 전체 여성 인구 중 무려 90퍼센트가 참여했다.

여성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았고, 집에서도 가사노동을 멈추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인 산업들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전화 서비스가 멈췄고,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으며, 학교와 보육원은 문을 닫았다. 승무원들이 나오지 않아 항공기 운행도 취소되었고, 은행원들이 나오지 않아 임원들이 직접 일해야 했다. 아이슬란드 주요 수출산업인 생선가공업도 멈췄다. 아이들을 직장에 데리고 나온 남성들 때문에 고용주들은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파업이 끝나고 여성 식자공들이 낸 이튿날 신문은 온통 파업에 관한 소식이었다. 

여성의 힘이 모이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1980년, 이혼 경력이 있는 싱글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가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된 여성 대통령이 되었고, 1999년에는 여성 의원 수가 하원의원 수의 3분의 1을 넘겼다. 아이슬란드는 현재까지 세계 성평등 순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지난해 10월 24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14퍼센트의 성별임금격차를 규탄하며 ‘2시 38분 조기퇴근’ 여성 파업을 진행했다. (처음 여성 파업을 했던 1975년의 성별임금격차는 40퍼센트 이상이었다.) 프랑스 여성들도 아이슬란드를 따라 11월 8일 4시 34분부터 파업을 진행했다. 

1975년 10월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파업(사진 출처=오늘보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폴란드·아일랜드 여성 파업

아이슬란드의 경험은 폴란드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집권 극우정당인 법과정의당이 추진하는 낙태 전면 금지법을 막기 위해 2016년 10월 3일 폴란드 여성들은 ‘검은 월요일’이란 이름으로 하루 파업에 나섰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폴란드는 강간·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금지돼 있다. 법과정의당은 이러한 사유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를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내놨다.

전국 각지에서 10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노동조합과 자영업자, 고용주, 남성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그 결과로 낙태 전면 금지법 발의안이 폐기되었지만, 폴란드 여성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가톨릭 국가로, 현재 모든 사유의 낙태가 금지되어 있으며 낙태죄는 형량이 최대 14년에 달하는 중범죄다. 이는 태아에게 임신한 여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아일랜드 헌법 8조에 따른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해왔고, 아일랜드 정부는 발의를 약속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아일랜드 여성들은 올해 3월 8일, 정부에 국민투표를 즉각 발의할 것을 요구하는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중착취, 심화된 착취를 경험한다. 때문에 여성의 투쟁은 모순이 가장 심화된 지점에서 시작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세계전쟁으로 터져 나올 때, 경제 발전이 저임금 노동을 발판으로 삼을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을 심화시킬 때마다 여성의 투쟁이 터져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 1월 21일, 워싱턴 여성행진. 참가자들은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을 조롱하며 분홍색 털모자(푸시햇)를 쓰고 집회에 나왔다.(사진 출처 = 오늘보다)

싸우는 여성이 세상을 바꾼다

올해 3월 8일의 중심 의제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여성의 단결된 힘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여성을 쥐어짜는 동시에,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강화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1월 21일 트럼프 신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진행된 ‘워싱턴 여성행진’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심화되고 있는 폭력과 착취, 혐오를 넘어 “관계를 재건하고 분열을 치유할 것”을 선언했다. 국가 폭력과 성·인종 차별을 해체하고, 생활임금을 위해 싸울 권리를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하고, 여성의 재생산 통제권과 가사노동·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주노동자와 난민, 성소수자의 권리 운동에 연대하는 운동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위기의 시대, 대안적인 가치와 연대를 창출하는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3월 8일, 함께 모이자. 우리의 권리를 외치며 위기를 넘어 희망을 열자.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노조페미니즘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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