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정치방침 안이 끝내 부결됐다. 모든 수정안이 부결됐고, 원안도 부결됐다. 2018년 지방선거 전까지 다수의 진보정당들을 통합하는 ‘선거연합정당’ 창당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2017년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들 간 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화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방침이 부결된 결정적 이유는 단순히 정권교체에 있지 않다. 실제로 “귀중한 우리 표를 흔들어 절체절명의 시기에 정권을 바꾸는 데 역행하면 안 된다”며 정권교체를 주장한 수정안은 6.8퍼센트의 찬성률에 그쳤다. 그보다 진보정당의 통일이 단시간 내에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의 단결 원칙 하에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조합원이 중심에 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을 반복하는 것만으론 상당 기간 어떤 정치방침도 성립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진보정당 역사를 통해 드러난 심각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이 문제였나부터 엄밀히 살펴야 한다. 먼저 민주노동당 분열의 일차적 원인인 정파 갈등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사진 출처 오늘보다

정파 갈등, 해법이 존재하나?

2000~2003년 민주노동당 재창당 사업이 마무리될 당시에는 정파연합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한 후 오히려 정파갈등이 폭발했다. 2005~2006년 비대위가 구성되고 최고위원 선거가 이뤄질 무렵에는 정파문제가 공식담론에 등장했다. 당시 여러 개인, 집단이 제기한 해결책은 크게 보면 ‘민주집중제의 정상화’와 ‘정파등록제’로 대별됐다. 민주집중제는 보통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로 이해되지만, 이는 이미 독점적 지배력을 확보한 다수파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정파등록제 역시 형성된 정파의 독점성, 배타성을 약화시킬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기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내부 민주주의 제도는 ‘당원주도형’을 강조하며 일반 당원이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정당엘리트를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직자, 당직자에 대한 당원직접선출뿐만 아니라, 당원소환제, 당원총투표, 당원발의제, 총회, 분회와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 제도들은 거의 활용되지 않았고, 민주노동당의 내부 갈등과 위기는 당원주도형 제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분당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는 정파 갈등 문제가 어떤 제도의 도입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그렇다면 당내 민주주의는 어떤 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그것은 노동자운동의 활성화, 노동자대중의 능동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의 전략적 관계는 실제 어떠했나?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관계는?

2004년 총선 직후 시점에는 민주노총의 정치활동에 대해서 낙관적 기대가 컸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 당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전체 당원 5만 1610명 중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2만 2513명으로 그 비율은 43.6퍼센트였다.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은 62만 812명이고, 따라서 조합원 중 당원 비율은 3.6퍼센트였다. 그러나 그 시점 이후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활동의 부진함을 지적한 글이 다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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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당시 시점을 회고해보면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2월 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사회적 교섭 안건’ 처리를 두고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 심지어 신나와 소화기가 등장하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2005년에는 노조비리 사건이 폭발했다. 1월에는 검찰이 기아차 광주 노조간부 8명을 구속했고, 4월에는 현대차 노조간부 8명을 구속했으며, 11월에는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긴급체포됐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교섭’ 문제를 두고 민주노총 내에서도 정파갈등이 폭발했을 뿐 아니라, 노조비리 사건으로 민주노총이 마비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정당과 전략적 관계를 성숙시키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시점에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한 것이 적절했냐는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교섭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대별되는 독자정당을 건설한다는 이중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와 대칭적으로, 원내진출 시점부터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여당과 연대를 추구한 것이 적절했냐는 문제도 존재한다.

게다가 이러한 쟁점들은 정파 갈등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뜨거운 이슈였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 상반기에 이르러,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면서 사회당, 노동자의힘 등과 공조를 모색했지만, 이미 갈등과 불신이 커진 조건에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진보정당이 그린 ‘정당 모델’의 동요

민주노총이 갈등을 겪는 동안 민주노동당의 성격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점차 변화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관계법(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이 개정됐는데, 이는 한국정당의 성격을 변모시키는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 개정은 ‘1인2표 정당투표제’, ‘비례대표후보 여성 50퍼센트’ 도입으로 ‘진보적’ 변화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정당법상 지구당이 전면적으로 폐지되고, 선거법상 합동연설회, 정당연설회도 폐지됐다.

그 효과는 무엇인가? 2004년 총선에 관한 평가에서 공공연맹 정치위원회는 “단위사업장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려 했지만, 개정된 선거법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지원도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개악된 정치관계법에서 비례대표 후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지구당을 폐지하며, 지구당 후원회 제도를 폐지하고, 정당연설회를 폐지하고, 후보 외 어깨띠 착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의 경우, 민주주의 담론이 실종되고 저비용·효율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그 자리를 채웠다. 정당법 개정 역시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아니라 고비용 정치구조 해소가 그 목적이었다. 법을 통해 정당의 슬림화를 유도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대중정당 모델’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정치자금법도 선거공영제를 확대하는 대신 정치자금 조달을 더욱 규제했다. 그 모든 결과는 정당활동의 ‘규격화’고, 대신 선거공영제라는 당근이 제시됐다. 이제 정당은 당원에 의존할 필요성이 감소하고, 이것이 ‘정책정당화’로 합리화된다. 이런 경향을 전체적으로 ‘원내정당화’로 표현할 수도 있다.

진보정당이 이런 경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는 정치자금 지원이라는 눈 앞의 이득이 있었기 때문일 듯하다. 진보정당의 경우, 당원의 참여와 적극적 활동의 부족이 원내정당화에 대한 추종을 낳았는지, 아니면 역으로 원내정당화 경향이 당원활동에 대한 경시를 낳았는지, 그 인과관계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를 타개하려는 적극적 문제의식을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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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이념과 노선

앞서 언급했듯 2004년 원내진출 직후부터 이미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공조를 둘러싼 갈등이 표출됐다. 당시 자주파의 문건이 4대개혁입법(특히 국가보안법 개정) 통과를 위해 “열린우리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대승적으로 행보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당내 논란이 폭발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 차별성이 약화되면서 오히려 당 지지율이 뚜렷하게 하락했다는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야권연대가 끊임없이 추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 입법을 달성하려는 욕구와 정치인이 공직을 거머쥐려는 욕구 때문이다. 야권연대는 단기적으로 특정 입법에 성공하거나 의석수를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진보정당 고유의 정책이슈에 대한 ‘소유권’을 잃고 정체성이 약화되면서 장기적으로 지지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2011년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신설합당하면서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하고 야권연대를 결정한 것은, 기존정당에 포섭되어 단기적으로 국회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

기실 초기 민주노동당 강령은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였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자의 해방을 목표로 했던 사회주의 이념과 전통을 계승하되, 현존했던 사회주의가 지녔던 비민주성과 관료적 억압, 경제적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체제”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초기 민주노동당은 서구와 라틴아메리카의 신생 좌파정당의 실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시도했다. 독일 녹색당과 브라질 노동자당이 대표적 참고사례였다. 독일 녹색당에서는 ‘당직과 공직의 분리’, ‘비례대표 순환임기제’, ‘노동자평균임금 수준의 의원급여’를, 브라질 노동자당에서는 ‘기층조직의 활성화’, ‘참여예산제’를 적극 검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토나 실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효화됐다. 현존하는 진보정당에서 기존 정당과 차별적인 실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데, 이는 물론 정당 역량의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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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20년 평가를 위한 쟁점

몇 가지 쟁점을 다시 정리해보자. ① 민주노총이 추진하려 했던 ‘진보정치세력의 대연합’은 기존 정파갈등을 해결할 진지한 대안을 고려했나? ②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시기에도 이미 나타났던 조합원들의 소극성을 극복할 뚜렷한 방안을 담고 있나? ③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상호발전을 꾀할 전략적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상이 있나? ④ 기존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에 왜 무비판적인가? 정당의 규격화와 선거공영제라는 틀 내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실현이라는 이상이 실행 가능한가? ④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일관되고 장기적인 전략적 판단이 존재하나? ⑤ 통합진보당 당시 ‘사회주의’ 강령의 삭제 문제를 간과할 수 있나? 새로운 진보정당은 어떤 이념, 어떤 사회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그렇다면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에서 북한에 대한 평가를 우회할 수 있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은 민주노총의 혁신과 진보정당운동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는 현재 민주노총만이 답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실제로 현재 민주노총이 체계적인 답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광범위한 사회운동 진영이 이러한 문제를 함께 검토,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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