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했다. 여당 대 야당이라는 양당구도를 고착화시킬 수 있는 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고 하고, 특히 한국 정치는 특유의 역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양당구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가 늘상 일어난다. 그래서 여러 정당이 명멸하는 정치체계의 출연은 절반 정도 필연이다. 수많은 정치전문가들이 한국 정치가 거의 양당제적 체제로 고착화됐음을 지적해왔음에도 순식간에 5당 체제가 돼버린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양당체제는 극복되었는가. 가치와 노선에 따른 분화가 아니라 여러 ‘정파적 사정’에 의해 구성된 다극체제는 결국 다시 양당체제로 수렴될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의당이 창당된 것은 안철수 의원의 야망과 일부 의원들의 공천 문제가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이지 이들이 한국 사회를 바꿀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른정당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치와 노선에 대한 문제를 ‘정상성의 회복’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나 이른바 ‘태극기 집회’와 같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촛불시위는 박근혜 정권을 ‘비정상’으로 보고 박근혜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탄핵함으로써 ‘정상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극기 집회’는 촛불시위를 “종북”이니 “어둠의 자식들”이니 하는 말을 동원해 ‘비정상’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을 비롯한 박근혜 정권의 지지자가 ‘정상’이라는 점을 강변한다.

이런 ‘정상성 회복’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는 ‘정상성’ 너머의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상성 회복이라는 목표가 일단 달성되면 대중적 움직임의 열기는 진정되고 ‘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삶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아마 지금의 5당 체제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양당체제 비슷한 것으로 다시 수렴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상성의 회복 이후에도 정치적 문제는 남는다는 것이다. 정상성의 회복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불거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비로소 벌어지는 노선 경쟁이 사실은 교과서에 써있는 정치의 본모습이다. 양당제적 체제는 종종 ‘정상성 회복 이후의 정치’를 작동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돼왔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독재 대 민주화의 구도가 되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의 정권이 들어서면 종북 대 애국의 구도가 반복되는 게 대표적이다. 독재 대 민주화나 종북 대 애국은 언뜻 보기에 노선과 가치에 기초한 슬로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대착오적 구도의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정상 대 비정상’의 구도를 이름만 바꿔 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정상이냐, 비정상이냐가 아니라 어떤 노선과 가치가 지금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느냐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왼쪽부터)과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고양시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열린 오마이TV 주최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예비후보자 토론회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선은 야당 후보가 승리한다는 게 거의 기정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 국면의 해법은 ‘정상 대 비정상’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6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이 오마이TV에서 열린 합동토론회에 나와 한 말들을 보면 그렇다. 여러 문제가 언급됐으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는 ‘대연정’ 등에 대한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대연정 주장을 고집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여야정협의체 구성을, 이재명 성남시장과 최성 고양시장은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이 참여하는 형태의 연립정부 구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종류의 ‘협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국회선진화법의 존재이다. 현행 국회법 하에서는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60% 이상을 점하는 다수파를 형성해 국가적 과제를 힘 있게 추진해나가는 게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여의도 정치문화가 그대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여야정협의체가 됐든 대연정이 됐든 그게 애초의 의도대로 잘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정권 초기의 정책 과제 합의 과정까지는 이러한 모델이 작동할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안별로 각 정치세력이 입장을 달리하기 시작하고 통치가 다수 대중의 이해관계와 유리되기 시작하면 제도적으로 규정돼있지 않은 형태의 협의체나 연립정부는 반드시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걸 무엇으로 부르든 애초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이 권력 분점을 고리로 느슨한 형태로 연합하고 있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푸는 방법은 다수파를 더 강하게 형성하거나 아예 의회 내에서의 다수파 형성을 포기하는 길 뿐이다. 후자는 집권 세력이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현실적 가능성이 없을 것이므로 전자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여당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즉, 대연정 등의 주장에서 핵심은 자유한국당이 참여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한국정치의 차원에서 자칭 ‘개혁세력’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 거대여당을 형성하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느냐의 문제이다.

가능성도 의문이지만 성공한다 해도 이게 과연 올바른 정치인지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국민을 대표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거대여당을 형성하자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장은 자칫 의회의 기능을 훼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또, 이런 방식의 거대여당 형성은 결국 여당 대 야당의 구도를 강화해 ‘정상 대 비정상’이라는 정치 구도를 반복하게 할 수도 있다.

집권당이 통치를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교과서적인 그림은 새로운 정권이 국민의 호응을 받는 개혁과제를 추진해 의회가 이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치세력이 ‘협치’에 참여할 것인지의 문제는 알아서 정리될 것이다. 이런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지 못하고 협치의 대상에 대해서만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야권의 대권주자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개혁과제의 비전을 제대로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람직한 정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 과감하게 국회선진화법의 폐지를 말할 필요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이날 최성 고양시장이 개정 필요성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외에서는 양당체제를 경계하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존재적 조건을 가진 국민의당이 이러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반면 이제 야당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 자유한국당은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시절과는 달리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바른정당 소속인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새로운 특검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근거로 최순실 씨와 자유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비아냥도 내놓는 실정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태도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필요한 정치모델이 무엇인가를 근거로 판단하고 주장하는 세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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