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외노자들 때문에 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 받고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3D 기피? 불체자들 때문에 임금하락이 일어나서 기피하는 겁니다. 불법체류자를 동조하는 짓은 한국 수백만 서민을 못살게 구는 겁니다. 불체자는 외국에 대부분 송금하고 일끝나면 외국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이 땅의 서민은 어떻게 살까요? 그들의 범죄들은 또한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독거노인, 불쌍한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 한국에 진짜 보호해야 될 존재들은 따로 있습니다. 여론을 보세요. 전국민이 불체자와 그 동조단체들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당장 내일이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날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졌고, 위의 글은 그 카페에 '추방마땅'이란 아이디로 어떤 분이 올린 글입니다. 부분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현장에서, 가구공단 같은 대표적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인지, 기업들이 값싼 임금노동자를 찾아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이는 것인지는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처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 지난 8일 오전 11시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오마이뉴스 허은선

이주민은 이웃이 될 수 없는지?

노동시장이 개방되고 여러 이유로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독거노인,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까지 고통 받는 이웃들이 많다는 것도 지당한 말이지요. 그런데 왜 이주민들, 이주노동자들은 '서민'이 될 수 없고 '이웃'의 목록에서 빠져야 하는 걸까요? 진짜 보호해야 될 존재와 보호하지 않아도 될 존재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 걸까요? 위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서민이라는 말, 이웃이라는 말, 국민이라는 말에 깃든 폭력이 되려 두렵습니다.

사실 세계화 시대에 이주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와 시장이 이주와 노동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고 비인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참으로 복잡하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라 굳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산율이 바닥을 기고 내수시장이 침체되는 판국에 한국사회가 살 길은 다문화 사회이고, 그래서 이주민을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포용하자는 말은 더 더욱 하기 싫습니다. 그런 논리는 1회용으로 이주노동자를 싸게 부려먹고 폐기처분하는 실용주의와 오십보백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1992년 2월 22일. 스무 살 먹은 한 네팔 사내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13년 동안 봉제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던 그는 1999년 이주노동자 노래자랑에 참가해 문화부장관에게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5년 전부터는 아예 '스탑크랙다운(단속을 멈춰라)'이라는 락그룹을 결성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방송국(MWTV)에서 기자로도 활동을 하면서 말이죠. 미누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얼마 전 출입국관리소의 표적단속에 걸려 곧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8년 동안 이웃이었던 한 사람

그를 정부기관은 '불법체류자'라고 부르고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합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은 다들 불법전입이 아니라 위장전입이라 하고, 경찰과 출입국관리소는 불법단속이 아니라 과잉진압, 과잉단속이라고 하면서 왜 한국정부에 신고한 것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쉽게 '불법'의 딱지를 붙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적 상황에서라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저 위장체류, 과잉거주일 뿐입니다.

공소시효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살인은 얼마 전까지 15년이었다가 25년이 되었다네요. 강간치사죄는 15년, 아동성범죄도 15년이었다가 좀 늘어날 조짐이 있습니다. 영아유기죄는 5년, 공문서 변조 죄는 10년입니다. 반면에 한 장소에 15년 살면 점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체류 허가를 받지 않고 체류한 것이 죄라면 그 죄의 공소시효는 도대체 몇 년이어야 할까요? 흔히 위장전입으로 불리는 주민등록법 위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3년인데 말이죠.

그저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몰라가는 것도 문제지만 18년이나 이 땅에서 살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을 단지 '실정법 위반'을 들며 쫓아내려 하는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의 행태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바다 건너 어떤 나라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묻지 않고 10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부여한다고 하는데 한국사회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민으로, 이웃으로 살아온 그를 이 사회 구성원으로, 시민으로, 국민으로 대접하기는커녕 꼭 짚어서 쫓아내려는 국가와 이를 당연시 하면서 이주민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리는 이 사회가 저는 너무나 불편합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그는 네팔인이지만 분명 그는 나의 이웃입니다. 국적을 이유로, 불법이라는 딱지 때문에 그를 쫒아내야 하는 것이 실용주의, 국가주의라면 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단속하고 추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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