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도둑이 아니었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밖에 없어요. 박정희 대통령께서 우리를 이렇게 잘 살게 해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분의 딸에게 이런 짓을 하나요? 탄핵은 기각돼야 해요"

▲지난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벌어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의 연설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연합뉴스)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난달 19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한 친박단체 회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 회원은 기자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반드시 기각돼야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약 5% 남짓한 박근혜 지지자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지난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친박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에는 어김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인형부터 박정희 흉상, 박정희 깃발, 대형 사진 등이 속속 눈에 띠었고, 집회 주최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특정인을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자도 누군가와 관계가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 누군가가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과 대체로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거다. 박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대통령과 주권자의 관계다. 대통령은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국민은 후보자의 지도력·정책·도덕성 등의 여러 요소를 평가해 자신을 대신할 인물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단순히 국민이 사적 감정을 가지고 접근할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 잣대를 가지고 바라볼 대상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의 집회를 보면, 이성의 끈을 놓은 듯한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주장하려면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발언자들은 '음모론'에 기대고 있으며, 집회는 온통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팔이'와 시대에 맞지 않는 '반공'의 외침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을 투영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을 정치에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인 인식의 발로이며, 그 비합리적인 인식이 박근혜라는 최악의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선거는 국민의 의사결정을 대신할 정치인을 뽑는 자리다. 특정 정치인을 연예인을 좋아하는 듯한 '팬심'이나, 때로는 '동정심',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한 표를 던진다면, 결코 자신의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보진영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레이스는 마치 '추억팔이'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을 일깨워주기 위해 경주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노무현의 친구'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자신을 '김대중·노무현의 적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노무현의 모습을 한 김대중'이라고 한다. 정책 경쟁보다는 "누가 김대중, 노무현의 적자인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복수의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리전'에서 박 전 대통령이 승리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박근혜 탄핵심판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에 누군가를 투영해 대리만족을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 스스로가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후보자를 면밀히 평가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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