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앞이 시끌벅적하다.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언론악법 원천무효” “날치기 미디어법은 무효” 등을 주장하며 언론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치인, 언론인, 일반 시민, 종교인까지,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이들은 다양했다. 지난 20일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간 천정배 민주당 의원, 만 배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언론법 반대 손팻말을 들고 서 있는 기독교인들, ‘날치기 언론악법 완전무효’ 손팻말을 들고 곳곳에 서있는 시민들까지…

▲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22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 배를 하고 있다. ⓒ송선영
헌법재판소는 오는 29일 야4당이 청구한 언론법과 관련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시민사회 단체는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막바지 투쟁을 지난 20일부터 이어가고 있다.

오전 11시30분, 최 위원장이 ‘언론장악 저지’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막바지 투쟁으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들에게 만 배를 하기로 한 최 위원장의 표정은, 참 밝았다.

만 배 시작에 앞서, 최 위원장이 언론노조 산하 각 지·본부장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고 보도해 달라.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 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향후 미디어법 처리는 국민여론 수렴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의견이 70% 넘게 나왔다는 것이다. 정확한 학자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절대 지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지 않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 정권 끝날 때까지 언론 자유를 위한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오전 11시40분, 최 위원장이 일 배를 하기 시작했다. 뒤에 서 있던 각 지본부장들의 얼굴,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언론노조 관계자들의 얼굴에도 숙연함이 흘렀다.

▲ 김희선 전 의원이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의 무릎을 만져주고 있다. ⓒ송선영
천정배 의원과 함께 헌법재판소 앞을 지키던 김희선 전 의원이 이를 보고 안타까운 듯 연신 ‘아이고~’ 소리를 내뱉는다.

그는 기자를 향해 “짠 한 게 뭔 줄 아냐”고 물은 뒤 “짠 해 죽겠다. 애잔하게 못 보겠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이어 “그래도 언론노조는 참 대단하다”며 “이러한 환경속에서 끝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잠시 뒤, 최 위원장이 배를 멈추고 휴식에 들어가자 그 앞에 달려가서는 ‘아이구, 아파서 어떻게’라며 손수 무릎을 만져준다.

약 1시간이 흘렀을까.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던 시민들과 학생들이 언론법 반대 의미가 담긴 손팻말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한 남학생이 큰 소리로 “날치기, 날치기”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날치기’를 외친 이 남학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22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 배를 하고 있는 가운데, 그 옆에서 시민들과 기독교인들이 언론법 반대 의미를 담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송선영
이날 헌법재판소의 풍경은 색달랐다.

최 위원장이 만 배를 하고 있을 그 때, 바로 옆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소속 기독교인들은 ‘날치기 언론악법은 무효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지난 20일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한 천정배 의원은 이곳에서 성경을 읽기도 했다. 종교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언론법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이날 헌법재판소 앞의 풍경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생경한 풍경이었다.

사실, 최 위원장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최 원장이 먼저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 배를 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고, 만 배를 하면 죽은 자도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듯이…”라고 답했다. 만 배를 통해 ‘언론법 반대’라는 간절한 의미를 전하겠다는 최 위원장의 진심이 담긴 듯했다.

1인 시위를 마친 기독교인들은 최 위원장을 향해 “언론법이 날치기 통과된 이후부터 이곳에서 두 달 이상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할 때까지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할 것입니다. 힘내십시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22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 배를 하고 있다. ⓒ송선영
오후 1시가 되었을 무렵, 한 시민이 음료수 두 박스를 구석에 슬며시 놓고 사라졌다. 언론노조 관계자가 뛰어가서 묻자, 그는 ‘그냥 지나가던 시민’이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최상재 위원장은 이날 오전 11시4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108배씩 다섯 번, 540배를 했다. 오는 29일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리기 하루 전날인 28일까지 만 배를 채울 계획이라고 한다. 2시간 가량 배를 한 뒤에도, 최 위원장의 얼굴은 여전히 밝았다.

▲ 만 배를 마친 최상재 위원장이 천정배 민주당 의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송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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