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의원의 행보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김종인 의원이 탈당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결심만 남았다는 설이 3일 중앙일보를 통해 제기됐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가 김종인 의원은 직접 진화에 나섰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어떤 결심도 하지 않을 것이며, 대권에 도전할지도 정한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인 의원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태도에 대해서는 분명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나는 소위 '속은 사람'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이 기필코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는데, 민주당 구성원 중에서 열의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이라고 발언한 것 등을 비판한 것이다.

김종인 의원이 “속았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상법개정안 등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알려진 상법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2일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김종인 의원은 이를 ‘의지의 문제’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상법개정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이 합의한 것은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 대표 사외이사 의무 선임 등이다. 주로 대주주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증진시키자는 것으로 그 핵심은 주주자본주의의 강화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정치권 내외에서 언급된 경제민주화 담론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재벌의 지배구조 일부를 소극적으로 개선하자는 취지로 신규순환출자 금지 등의 일부 제도를 도입하는 선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가 완료됐다고 보는 관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완성을 선언한 경제민주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주주자본주의적 원칙을 상당 수준으로 강화하는 정책의 도입이다. 상법개정안은 이 흐름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는 사회안전망 강화 등 분배 중시 정책으로 성장의 결실을 실질적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논의를 복지제도 도입까지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서 탈당 관련 내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의원의 경제민주화는 첫째와 둘째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사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내놓은 바는 없다. “그동안 많이 얘기했다”고 하거나 “아직도 그걸 모르느냐”며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게 전부다. 어쨌든 상법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실망을 했다고 한다면 위의 해석에 일리가 있는 걸로 볼 수 있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발언에 화를 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주장한 것은 재벌이 가진 기업을 분할하는 이른바 계열분리명령 등이 무리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지난 1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재벌 분할을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며,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논하면서 조건 없는 사랑을 쏟다가는 중소기업을 오히려 죽일 수 있다”라면서 “지금까지 정치권에 제기된 경제민주화는 실체가 없고 포퓰리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계열분리명령에 대해서는 김종인 의원도 금융사 등에 국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정적인 입장인 걸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철학의 차이가 드러났다기 보다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포퓰리즘’이라는 ‘워딩’ 자체가 문제인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김종인 의원 또는 그 측근들의 불만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의 정치적 재산권 문제로부터 나오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윤철 총리론’이 나왔다는 사실도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캠프 측은 지난달 23일 이른바 ‘예비 내각’ 구성 소문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국무총리에, 노영민 전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소장을 맡고 있는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경제부총리에 이미 내정한 듯한 내용의 근거없는 ‘괴문서’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이를 무책임하게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이미 문재인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기 총리’로 고려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호남 출신으로 국민의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지냈다. 일종의 ‘화합형 인사’인 것이다. 현재 대권 도전을 선언한 상태인 정운찬 전 총리에게 다시 국무총리직을 맡길 수 있다는 예상과 전망도 있다. 문재인 캠프 안팎에서 이런 인선에 대한 구상이 돌아다니는 상황이 되면 김종인 의원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자리 욕심’이 문제가 아니다. 김종인 의원은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다가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 추진 등을 놓고 이한구 전 의원 등과 대립해 무력화 됐다가 이후 사실상 ‘팽’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김종인 의원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이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추진한 정책이 법안으로 남지 못하고, 그렇다고 중요한 권한을 갖는 자리를 약속받을 수도 없다면 차라리 ‘플랜B’를 실행하는 게 낫다는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플랜B’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거다. 김종인 의원이 탈당을 해 자유한국당에 갈 수는 없는 일이므로, ‘제3지대 정계개편’이 주요한 로드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개헌이다. 그런데 유력 대권주자들을 대상으로 임기 단축이나 개헌 공약 등의 약속을 받는 게 아니라 조기대선에서의 성과를 목표로 한다면 여기에 유력한 대권주자가 더해져야 한다.

야권의 대선 선두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구로구 G-벨리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현장 리더들과 간담회에서 민간 일자리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뿐이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의 경우 기본적으로 확보한 지지율이 높지 않은데다 사실상의 대체제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얻는 상대적 이득도 여전히 크지 않은 수준이다.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수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문재인 전 대표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에 김종인 의원이 불을 붙인다고 해서 폭발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즉,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종인 의원이 탈당하느냐의 문제는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 흐름과 연동돼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종인 의원이 스스로 출마하는 경우도 상정하고 있으나, 이것이 현실이 되려면 김종인 의원의 출마선언 후에 안철수 의원이 얻는 지지율을 상회하는 여론조사 수치가 나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김종인 의원은 “나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

‘플랜B’가 동작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김종인 의원이 과연 ‘문재인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김종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불안요소는 문재인 전 대표 측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여기에는 정치의 기예가 필요한데 문재인 전 대표가 그것에 정통한 인물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김종인 의원의 움직임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는 계기로 작용할지, 아니면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폭탄’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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