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공무도하가’는 중장년층 정도 된 이의 머릿속에 언제나 맴도는 글이다.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물에 쓸려 돌아가시니/가신님을 어이할꼬’(정병욱 역)

기자에서 출발해 이제는 무엇을 이야기해도 소설이 될 내공을 가진 김훈의 신작에는 어디에도 ‘공무도하가’가 없지만 제목이 ‘공무도하’다. 뒷날개의 글처럼 그는 ‘나의 글은 (강을 건넌 백수광부와 달리)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 도서 '공무도하' 표지
소설의 날줄은 창하와 해망이라는 두 공간이다. 창하는 주인공인 노목희의 고향으로 변절자로 찍혀 그곳을 떠난 장철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장철수와 미술교사를 했던 노목희는 그곳에서 한때 관계를 갖던 이들이다. 하지만 학교의 폐교로 노목희는 서울의 출판사에 취직해 편집과 북디자인을 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그의 방에 찾아드는 이는 사건 현장을 쫓아다니는 사회부 기자 문정수다. 다른 공간인 해망은 고향을 떠난 장철수의 은둔처이자 사건이 종종 터져 사건기자인 문정수가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 두 공간에서 사람들은 정말 지리멸렬하게도 얽혀 있다는 것들을 체험하는 이야기다. 실제 공간으로 본다면 창야는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녕쯤 되는 도시이고, 해망은 서해대교가 생긴 평택쯤이다.

소설의 씨줄은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약한 영혼들이다. 노목희나 문정수, 장철수는 물론이고 박옥출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사건이 찾아온다. 그들을 과거로 회억시키는 창야의 수몰과 오금자의 아이가 개에 물려 죽는 사건, 해망에서 여고생 방미호가 크레인에 치어죽는 일이 그렇다.

그리고 이 씨줄과 날줄 사이의 빈 공간에는 시안에서 실크로드를 넘어가는 타이웨이 교수의 ‘시간 너머에’라는 기행집과 의상과 원효의 이야기, 미군 폭격장소가 된 뱀섬의 수난, 베트남에서 온 후에의 이야기들이 그 그물의 빈 공간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거의 실체가 없다. 노목희와 문정수, 장철수의 감정도 흐름이 없고, 뱀섬 이야기도 흐름이 없다. 박옥출과 장철수의 이상한 인연도 굵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탄탄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비루함을 보여주면서 그 인연의 질김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로 친다면 전형적인 홍상수 스타일의 영화인 셈이다.

이 소설이 읽기가 편한 것은 김훈이 이전 소설처럼 문장에 힘을 주려고 하지 않았던 데 있다. 단어나 문장이 짓눌려지면 독자들의 압박감이 심해지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기자인 문정수다. 작가가 한국일보에서 시작해서 시사저널 등을 거친 기자 출신이니 만큼 기자 이야기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에 걸리는 것이 있다. 작가가 갈수록 스스로를 나약하게 생각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인 등 좋은 지식인들이 혼돈을 겪는 것을 많이 봤기에 우려가 앞선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믿었던 지식인들이 자기 스스로조차 지키지 못한 허약한 논리로 변하는 것은 안타깝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김훈은 그런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인데, 이번 소설에서 문정수의 모습을 보면 그럴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아팠다. 제발 내 이런 우려가 영원히 기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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