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선명한 <시그널>의 충격. 그것을 가능케 한 아주 많은 요소들의 협력이 있었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어찌 보면 가성비로는 최고의 수훈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오연아의 존재감이었다. <시그널>의 초반 분위기를 다잡은, 그때까지는 매우 낯설었던 배우 오연아였다.

여배우 특집을 꾸민 <해피투게더>에 오연아가 나왔다. 생애 첫 예능 출연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떨지 않는 모습은 역시나 연륜이 주는 침착함일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오연아는 <시그널>에서 보였던 그 소름 돋는 반전 연기처럼 <해피투게더>를 쥐고 흔들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

박진희를 비롯해서 총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출연했지만 마치 <해피투게더>가 아니라 무릎팍도사에 오연아가 출연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말로는 무척이나 떨리고, 다큐가 될까 걱정이라고는 했지만 다큐는커녕 뭔가 전문 예능인의 솜씨를 의심케 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미 정평이 난 연기력을 동원한 리액션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혼자 사는 사람의 독특한 몸 관리법이라고 소개한, 테니스공으로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오연아의 모습은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예능에 처음 출연한 여배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테니스공을 어깨에 얹고 기둥에 대고 씨름을 하는 듯한 모습이 흔히 여배우라는 이미지에 맞지도 않지만, 분명 슬픈 대목인데 웃음이 터지게 한 것을 보면 오연아는 늘 진지한 연기를 해온 것과는 달리 예능에 타고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

거기다가 적지 않은 나이에 긴 무명을 겪어야 했던, 그래서 <시그널> 전에는 연기를 접어야 했던 생활고를 담담히 털어놓는 모습까지 우리네 시청자가 딱 반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단짠 구성이었다. 반려견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뛰어갔지만 막상 도착해서는 돈이 없어서 병원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연기를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강아지 사료도 사고, 끓여먹던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다 먹는 등 별 것 아니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을 누리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는, 평범하지만 바로 내 주변 일 같은 현실감은 이 배우와 시청자를 자연스럽게 연민의 끈으로 묶이게 하였다.

오연아라는 배우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적어도 연기에 대해서는 만족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 배우는 단지 인기와 지명도만 부족한 대기만성형 인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무엇보다 어떤 주제로 말을 하든 사람들로 집중케 하는 묘한 흡인력이 있어 보였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

그러니까 <시그널>의 그 지독하게 음산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편이 돼주고 싶은 딜레마를 안겨주었던 간호사 연기가 단순히 연기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사람 자체가 주는 끌림이 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오연아는 대체로 강한 캐릭터을 맡아 해왔다. 아마도 <시그널>의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이 오연아의 진정한 역량을 가리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분명한 것은 오연아에게 더 다양한 캐릭터와 연기를 기대하게 한다는 것이다. <해피투게더>를 통해서 많이도 웃었지만 오연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고, 더 큰 그림을 그려보게 된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