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대형마트에서 990원짜리 감자, 깻잎, 양파, 고추 등을 실속제품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한 봉지에 적당한 양이 들어가 있는 제품들의 인기가 많아졌고, 그 품목 역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농축산물 제품이 나오는 것이 단순히 1인가구를 노린 마케팅 때문인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농축산물을 직접 재배하고 기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 노동 없이 990원 제품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돼지 농장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S씨의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1년 동안 돼지 농장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S씨는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고강도 장시간의 노동을 했지만, 손에 쥘 수 있는 임금은 고작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계약서상에서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한다고 되어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돼지 농장에 불려 나가야 했고 밤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다가도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S씨는 돼지만 돌보는 게 아니라 다른 잡일도 해야 했다. 돼지 축사 마당에서 팥을 재배하고 돼지 축사로 들어가는 길의 잡초를 뽑고 여러 다른 식물(콩, 고구마, 고추) 등도 심어서 키워야 했다. 심지어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한 적이 많았으며, 외국인등록증도 원본은 사업주가 가지고 있고 복사본만 받을 수 있었다. 식사를 제공한다고 계약서에 쓰여 있었지만 실제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병에 걸려 죽은 돼지뿐이었다.

이것이 과연, S씨가 운이 나쁘게도 못된 농장주를 만나는 바람에 노예처럼 일을 한 사례에 불과한 것일까? 이미 언론에서 수차례 지적된 것처럼 대부분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계약서상에 나온 근로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 63조(휴일, 휴게시간 적용 제외) 독소조항 때문에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로 비닐하우스나 임시 가건물을 사용하게 하는 문제도 있다. 거기에 남녀혼숙, 냉난방 불가능, 사업주 마음대로 숙식비 폭리 등의 문제 역시 대표적인 인권침해로 지적되어 왔지만 정부는 숙식비의 상한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정도의 조치만 취하고 있을 뿐이다.

깻잎하우스에서 일하는 모습. 매일 아침 6시에 출근, 12시~13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저녁 17:30분까지 열심히 일해서 하루에 깻잎 15박스(1박스당 100장짜리 100묶음)를 따야 한다.

최근에도 경남 밀양지역 깻잎 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 위반과 임금체불, 불법파견, 비인간적인 숙소시설과 부당하고 과도한 숙소비 공제 등으로 양산노동지청에 진정을 제출했지만, 노동청이 반 년째 묵묵부답으로 외면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 2012년 이주인권연대에서 발간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 <노비가 된 노동자>,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4년 앰네스티 <고통을 수확하다> 인권보고서 등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계속 폭로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별로 나아지고 있지 않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미 심각하게 열악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향시킬 가능성이 높은 초단기 농축산업 계절 근로자제도(이하 계절근로자제도)를 올 3월부터 전국단위로 시행하기로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 법무부는 최근 계절근로자제도 확대 실시를 위해 3월 3일까지 각 지자체에서 접수를 받은 이후 3월 10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3월 13일 전국단위로 시행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미 정부는 농번기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2015년부터 ‘계절근로자제도’를 시범적으로 실시해왔는데 2015년 괴산군, 보은군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전국 4개 지역으로 확대 운영되었다. 2016년에는 총 124명의 계절이주노동자들이 4개 군 농업경영체에 배정(양구군 62명, 괴산군 25명, 보은군 30명, 단양군 7명)되어 일한 바가 있다.

한국의 계절이주노동자들은 단체로 입국하여 각각의 농업경영체로 배정되고, 취업기간이 종료되면 단체로 출국하고 있다. 계절이주노동자의 취업기간은 최장 3개월이고 취업기간 연장은 전혀 불가능하다. 또한 계절이주노동자는 지정된 농업경영체에서 근무해야 하고, 사업장 이동역시 불가능하다. 이러한 계절근로자제도의 인권 침해 요소는 해외에서도 계속 지적되었고, 한국에서도 시범사업이 시행된 2015년부터 여러 이주단체로부터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온 바가 있다. 이러한 계절근로자제도는 장기적으로 농촌지역 노동자들의 전체적인 임금조건 및 근로조건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법무부의 전면시행 추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미 시범사업을 실시한 괴산군의 경우, 계절 이주노동자들의 3개월 치 임금을 근로계약이 끝나고 귀국하는 시점에서 현금으로 지급하여 논란이 된 바가 있다. 이에 대해서 괴산군에서는 한 달 치 월급을 받게 되면 목돈을 갖고 사업장을 이탈할 우려가 있고, 은행에서 단기간에 국내체류를 할 경우 통장 개설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애초에 근로 기준법상에 매달 1회 정기적으로 정해진 날짜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임금체불에 해당되고 단기 체류로 인해 통장을 개설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 제도 자체가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계절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 미만 단기사증(C-4)으로 국내에 입국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적용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고 산재 보험 역시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에, 이주노동자들이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위험이 항시 존재하고 있다.

경남 밀양시 한 깻잎 농장 농업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비닐하우스 숙소.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제공=연합뉴스]

계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입국하는 과정에서도 존재한다. 2015년에 집안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불법체류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2000만원에 달하는 담보까지 잡히는 매우 엄격한 조건하에서 선발되었다. 이와 같은 보증금 및 강제서약의 문제는 제도의 전면시행 시 각 나라에서 얼마든지 확대 강화될 소지가 크다.

결국 더욱 값싼 이주노동자들을 농촌지역에 데려와 초단기 강제노동을 시킨 이후 출국시키겠다는 정부의 계절근로자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반노동적 반인권적 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법무부는 졸속적으로 추진 중인 계절근로자제도 전면 시행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심각한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추천영상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향상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을 두 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실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사례를 담은 영상이다. 근로기준법 제63조 예외 조항을 악용하는 농장주들 때문에 한 달 평균 300시간 이상씩 일하고도 최저임금도 못 받고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뚜이'와 '소바나라' 이야기를 담은 “일 많이! 월급 조금” 다큐멘터리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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