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의 필요성이 재확인됐다. 2일 오후 1시 30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언론개혁의 방향과 입법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내영 입법조사처장이 축사를 맡고, 최영재 한림대 교수와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가 발제, 윤석민 서울대 교수, 유홍식 중앙대 교수,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김여라 입법조사관이 토론에 나섰다.

▲<언론개혁의 방향과 입법과제> 세미나 포스터. (사진=국회입법조사처 홈페이지 캡처)

공영언론의 후진적 지배구조 '권언유착'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최영재 교수는 “한국의 공영방송은 이사회를 대통령이 임명하다시피 하고, 공영방송 사장이 청와대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매우 후진적인 지배구조”라면서 “공영방송뿐 아니라 연합뉴스, YTN 등도 사실상 공영방송과 거의 비슷한 정치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문제를 가지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종속 혁신의 문제는 공영언론의 경영진과 정치권력과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권언유착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최영재 교수는 “권언유착은 언론의 권력 감시 역할과 공정보도를 방해하고, 공영언론사의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훼손하고 보도국 내부분열을 조장해 최종적으로는 국민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면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불공정 보도 문제 등 여러 언론개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열쇠 중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최영재 교수는 “국가적, 사회적으로 이번 계기(박근혜 게이트)에 공영방송과 공영언론의 지배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공영언론이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개혁의 적기임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사회는 5:5, 5:4, 7:6 정도의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앞으로는 이사들이 합의하에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언론장악방지법의 골자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밖에도 최영재 교수는 ▲사실보도의 문제 ▲포털저널리즘의 문제 등을 언론개혁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언론이 사실보도를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팩트 체크 저널리즘 등과 같은 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포털저널리즘에 대해서는 “표절과 어뷰징이 난무한다. 포털 메인에 걸리는 기사의 40~50%가 어뷰징 기사다. 정말 심각하고 한심하다”면서 “포털은 언론인 것 같으면서 언론이 아닌 사이비언론”이라고 꼬집었다.

▲<언론개혁의 방향과 입법과제> 세미나 모습. ⓒ미디어스

"공영방송이 공적 책무 못하고 있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민정 교수는 “공영방송의 개념과 수행해야 할 것은 방대하지만, 요약하면 국영방송, 상업방송이 제공하기 어려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핵심적 공론장으로 기능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종편의 상업주의적 정치화 현상과 온라인상의 가짜뉴스 범람이 맞물리면서 집단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현재 언론 상황을 진단했다.

김민정 교수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과 정치종속화의 양상이 너무 심각하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지금과 같은 크기로 공영방송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휘둘린 적은 없었다”면서 “저널리즘 원칙에 관련된 문제 제기나 논의가 정파적 구호 또는 주장으로 전락해 구성원 간의 불신과 대립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어, 공영방송 저널리즘 구현의 토대가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교수는 “정치적 독립성의 심각한 훼손으로 인해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은 거의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해 결과적으로 ‘누구의 편도 아닌 사회 전체의 공기’라는 인식이 시민들에게 공유될 때 비로소 쌓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정 교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이 도입하고 있는 규정들은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쪽에 유리한 내용이 아니다”라며 “20대 국회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지금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 구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개혁의 방향과 입법과제> 세미나에서 기념촬영하는 참가자들. 왼쪽부터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 유홍식 중앙대 교수,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최영재 한림대 교수, 정세균 국회의장, 이내영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윤석민 서울대 교수,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미디어스

"개혁하면 손해보는 기득권 세력이 언론장악방지법 가로막는 것"

토론자들은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에 대체로 견해를 함께 하면서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회의감을 전하기도 했다. 유홍식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과연 언론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라면서 “토론 내용, 제시 방향, 구체적인 방향까지 이제까지 많은 세미나를 통해서 얘기를 해왔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김동원 국장도 “왜 이 국면에서 언론장악방지법이 통과가 되지 않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세미나를 방청한 이내영 처장은 “정치학자로서 현실적인 개혁의 정치에 대한 논문을 쓰고 현장에서 본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다수의 국민이 개혁을 원하더라도 과제가 통과 안되는 상황이 많다”면서 공영방송이 지배구조 개선이 되면, 잃는 것이 개혁에 동참하면서 얻는 이득보다 더 큰 기득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처장은 “그분들은 포용과 공존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것, 협력의 정치가 정착되는 것보다는 진영논리와 증오의 정치가 계속되는 게 본인들의 정치적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내영 처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학자들의 더 많은 노력과 시민사회의 더 많은 노력이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힘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정치학적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세미나에 앞서 정세균 의장은 국회의장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방송공정성 여론조사를 소개했다. 정 의장은 “지난달 15~16일 국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언론과 방송이 공정하느냐'는 질문에 66%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권력으로부터의 언론의 독립성'을 묻는 질문에는 68.7%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또 공영방송 인사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응답은 83.6%에 달했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이런 현실에서 우리 국회가 언론을 어떻게 국민과 가깝게 하고 신뢰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매체로 발전시키느냐는 건 고민해야 할 주제”라면서 “언론개혁은 공정성·독립성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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