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총리선거를 앞두고 있는 독일에서는 최근 유력 당선자로 떠오르고 있는 SPD(사회민주당)의 마르틴 슐츠 총리후보가 내세운 새로운 정책방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17년 2월 20일 마르틴 슐츠가 한 신문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이 공약은 독일의 경제사회개혁의 내용을 담고 추진되어왔던 ‘Agenda 2010’의 수정에 대한 내용이다. 마르틴 슐츠의 이 구상이 알려진 지 불과 일주일 남짓 지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물론 여러 언론에서도 매일 이와 관련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다.

2014년 10월 당시 메르켈 vs. 슐츠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Agenda 2010’의 주요 내용

2003년 3월 12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SPD)가 국회연설을 통해 발표한 ‘Agenda 2010’은 발표 당시 침체기에 있던 독일경제의 정상화를 목표로 수립한 정책 프로그램이다. ‘Agenda 2010’에 포함된 대표적인 개혁 프로그램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의료와 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정부와 기업의 사회부담 축소, 세제개혁, 교육/연구 강화 등으로 독일이 전후에 실시 한 개혁 중 가장 강력한 조치로 평가받으며 도입된다. 이는 정책적으로 크게 네 개의 개혁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내용들은 창업 지원, 구직자에 대한 일자리 중계방식 개선, 교육을 통한 인력양성, 사회보장제도 개편 등으로 정리 가능하다.

ARD의 ‘Agenda 2010’개혁 10주년 정책평가 페이지 화면출처: ARD 홈페이지 (https://www.tagesschau.de/inland/agendazwanzigzehn-hintergrund100.html)

첫째, 경제 분야에서 자영수공업자(Handwerksordnung)의 사업체규제완화를 통해 이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3개월 이내 기술습득이 가능한 직종들에 대해서는 기술숙련공증명서(Meisterbrief)가 없이도 직종종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개혁에 따라 전체 94종의 수공업 중에서 53종에 달하는 기술숙련공 의무기준이 폐지되었다. 또한 해고규제법(Kündigungsschutzrecht)을 통해 10인 이하 중소기업의 신규채용절차를 간편화 하고, 기업 경영상의 문제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재직기간과 연령, 장애인일 경우 장애의 정도, 노동자의 생계부담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경제 분야에선 이 외에도 임시직 고용에 적용되던 ‘경미고용관계’(Geringfügige Beschäftigungsverhältnisse)의 완화를 통해 일종의 파트타임 직업인 ‘미니잡’(Mini Jobs) 활성화 정책도 추진하게 된다.

둘째, 교육과 관련해서는 직업교육(Ausbildung)과 교육정책(Bildungspolitik) 등 두 가지로 개혁을 추진한다. 직업교육에선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직업교육프로그램(Besondere Ausbildungsangebote für Jugendliche)의 계획 및 제공, 사업장에서의 분야별 숙련공들에 의한 직업교육실시 등의 과정 등을 추진하게 된다. 교육정책에선 연방교육진흥법(Bundesausbildungsförderungsgesetz: BAföG)의 개혁과 지원예산증액(정책 발표 시기 시점 5년 이내 25% 증가)을 통해 고등교육 학생들을 증가시키고, 전업학생을 위한 교육과정 확충예산 40억 유로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Agenda 2010’의 개혁안 중 주요내용 셋째는 의료보험(Krankenversicherung)과 연금보험(Rentenversicherung)과 관련된 사안이다. ‘Agenda 2010’이 발표될 당시 독일인들의 90% 이상은 공공보험(gesetzliche Krankenversicherung)에 가입되어 연령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의료보험개혁은 공공의료보험사들의 재정 상태를 안정화하고 의료서비스 개선 등을 최우선목표로 삼았다. 재정안정은 피보험자들의 자가 부담 금액을 일정부분 높임으로서 공공의료보험사들의 부담을 낮춰주고, 의료서비스의 개선 등과 관련하여 지불해야 하는 기금들은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분담시키는 방안을 도입한다. 의료서비스의 개선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간의 경쟁체제 활성화, 경영/진료 등에서의 투명성 및 효율성 제고, 환자주권보장(Patientensouveränität) 등과 관련한 체계를 마련하게 된다. 의료보험비의 경우 도입 초창기 상승할 것으로 보았지만, 개혁을 실시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난 후 전체 공공보험가입자들의 40% 가량은 이전에 비해 적은 비용을 납부하게 되었다.

연금보험 개혁은 독일 사회가 노령화되면서 연금수령자가 증가하고, 연금납세자가 줄면서 재정문제가 불거지면서 실시하게 된 개혁이다. 단기개혁안에서는 연금수령자들의 변동대비금(Schwankungsreserve)을 경감시키는 대신 생활보호 분담금을 지급하고, 연금분담비율을 유지하면서 연금기금을 일정부분 확보하는 방안으로 추진되었다. 장기개혁으로 청년과 장년층 모두에게 연금지급을 보장하는 세대 간 형평성원리를 수호하고, 법정 은퇴연령인 65세를 유지하되 사실상 은퇴를 준비하는 60세 인구의 재직기간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63세까지 은퇴를 미루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대표적으로 정비된 규정들은 조기은퇴자들을 위한 인센티브 폐지, 고령자 취업에 불이익을 주는 노동 및 임금 관련 규정 폐지 등이 있다.1)

마르틴 슐츠 총리후보의 ‘실업급여 I’ 수정 구상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도입한 ‘Agenda 2010’이 발표된 지 15년이 지난 현재, 이 정책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SPD의 마르틴 슐츠 총리후보가 제안한 ‘Agenda 2010’의 수정은 당연히 정치권에서 많은 논쟁을 끌어내고 있다. 마르틴 슐츠가 제안한 ‘Agenda 2010’의 수정방향은 해당 정책이 도입된 이 후 유지되어왔던 복지축소의 정책방향을 복지증대로 선회하겠다는 내용이다. 마르틴 슐츠의 이 구상은 지난 2월 20일 대중신문 빌트(Bild)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마르틴 슐츠가 구상하고 있는 수정내용은 ‘Agenda 2010’의 ‘실업급여 I’(Arbeitslosengeld I: ALG-I) 지급기한 연장이다.

인터뷰 내용이 공개됨과 동시에 유력 일간지들은 물론 방송사들에서도 앞 다투어 심층보도 및 분석 기사들을 내보냈고, 2월 24일 발표된 ‘ARD-DeutsclandTrend’의 설문조사에서도 해당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Agenda 2010’이 추진했던 경제사회분야 개혁이 광범위함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I의 개혁이 눈길을 끌고 있는 이유는 모든 개혁의 초점이 실업급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르츠 개혁의 주요 내용(출처: Michael Hüther, 2014, 15~16쪽. 직접인용.)

‘Agenda 2010’은 2002년 독일연방정부가 설립한 ‘노동시장의 현대적 서비스’(Moderne Dienstleistungen am Arbeitsmarkt)위원회가 제안한 노동정책분야 개혁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Agenda 2010’을 언급할 땐 앞서 소개한 사회시스템의 개혁의 내용보다는 실업/사회보장을 다루는 ‘하르츠 IV’(위원회의 의장이었던 피터 하르츠의 이름을 따 명명됨: Hartz IV)가 주로 다뤄진다. ‘하르츠 IV’가 추진된 배경과 관련 내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3년 ‘Agenda 2010’이 발표된 이후 독일연방정부가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시기에도 실업률을 계속 상승하여 2005년 2월, 독일의 실업자 수는 530만 명에 달할 정도였고, 실업률은 11.7%에 달했다.2) 2004년 11월 발행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선 당시 독일을 ‘유럽의 병자’(The real sick man of Europe)라고 부른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3)

하르츠 개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SPD-녹색당 연정)가 기반을 마련함으로서 시작되었고, 이후 2005년부터 현재까지는 앙겔라 메크켈 정부(CDU/CSU-SPD 대연정)가 추진하고 있다. ‘하르츠 IV’라는 명칭에서 추론 가능하듯이 이 개혁안은 네 단계로 진행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고용유연화와 취업지원강화, 실업급여 수혜조건강화 등을 위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Agenda 2010’과 함께 하르츠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후 독일의 실업률은 눈에 띄게 감소하게 되는데 그 요인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한 ‘하르츠 IV’가 성공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다. 반면, 하르츠 개혁이 임시직을 확대하는 경미고용관계를 조장하면서 일자리의 질이 낮은 미니잡(월 400유로 이하)과 미디잡(월 800유로 미만), 계약직, 파견직 등을 확대하여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거세다.4)

독일의 실업률 변화 추이(1995년~2017년) (출처: Statista, 2017, Arbeitslosenquote in Deutschland im Jahresdurchschnitt von 1995 bis 2017.)

마르틴 슐츠 SPD 총리후보의 ‘Agenda 2010’의 수정안은 결과론적으로 지난 십여 년 동안 독일을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기틀을 제공했던 내용을 조정하겠다는 자체에서부터 논쟁의 중심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이 쟁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틴 슐츠가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언 자체에 대한 반응이 거세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지 하루가 지난 2월 21일 시민단체 INSM(Die Initiative Neue Soziale Marktwirtschaft)에선 ‘Agenda 2010’의 수정은 독일 경제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냐며 비판하는 광고를 일간지에 실었고,5) 독일고용인연합(Bundesvereinigung der Deutschen Arbeitgeberverbände)에서는 마르틴 슐츠가 정확한 근거 없이 수정안을 제시하려 한다며 그의 생각은 고용안정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6)

언론들의 비판도 더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Frankfurter Allgemeine)는 마르틴 슐츠가 ‘Agenda 2010’의 수정 구상을 밝힌 이후로 ‘Agenda 2010’을 공격하는 저의는 무엇인가?’(Was steckt hinter Schulz’ Attacke auf die Agenda 2010?),7) ‘슈뢰더 유산과의 작별’(Abschied von Schröders Erbe)8) 등의 기사를 통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제1공영방송 소속의 몇몇 공영방송사들에서도 힘을 더해주고 있다.9)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진다. 지난 22일에는 CSU(기독사회당)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사무총장 피터 타우베르 등의 인사들이 마르틴 슐츠의 구상에 ‘대량실업’이라는 표현으로 비판에 나섰고, 25일 메를렌부르트-포어포메른 주의 정당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Agenda 2010’의 수정 필요성을 일축하는 것으로 비판을 대신하기도 했다.10)

하지만 SPD측이 취하고 있는 ‘Agenda 2010’에 대한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연정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R2G(SPD-좌파당-녹색당)의 당사자 측에서도 해당 제안에 대한 언급도 나오지 않고 있지만 연정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암묵적으로 동의 표시를 하고 있다. 현재 SPD의 총리후보인 마르틴 슐츠의 행보는 단순히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항마로서가 아니라 사민주의라는 정치 배경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2월 21일 빌트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민당 지지자의 83%, 같은 좌파진영인 좌파당 지지자 79%, 녹색당 지지자의 73%가 마르틴 슐츠의 ‘Agenda 2010’ 수정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2월 24일 발표된 ARD-DeutsclandTrend에서도 실업급여 I 지급기한 연장으로 대표되는 수정에 찬성하는 입장이 65%, 반대 29%로 나타나 ‘Agenda 2010’과 관련된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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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genda 2010과 관련 추가 내용은 박명준(2004)의 ‘독일의 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 어떻게, 얼마나 진행 중인가?’와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2004)에서 발간한 ‘독일의 개혁: Agenda 2010: 현안과 해법’과 독일연방정책소개사이트 bpb에서 2005년에 게재한‘Die Agenda 2010: Eine wirtschaftspolitische Bilanz’(http://www.bpb.de/apuz/28920/die-agenda-2010-eine-wirtschaftspolitische-bilanz?p=all) 참조.
2
)https://de.statista.com/statistik/daten/studie/1224/umfrage/arbeitslosenquote-in-deutschland-seit-1995/
3) The Economist(2004). Germany on the mend(The World In 2005 print edition). http://www.economist.com/node/3352024
4)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FES Information Series’ 2015년 1월 자료와 Christian Dustmann 외의 2014년 논문 ‘From Sick Man of Europe to Economic Superstar: Germany’s Resurgent Economy‘(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8(1)) 참조.
5)
http://www.insm.de/insm/Themen/Arbeit/Arbeitslosigkeit-Langzeitsarbeitslosigkeit-Jugendarbeitlosigkeit.html
6)http://www.zeit.de/politik/deutschland/2017-02/agenda-2010-martin-schulz-falsche-zahlen
7)http://www.faz.net/aktuell/wirtschaft/wirtschaftspolitik/warum-spd-kanzlerkandidat-martin-schulz-agenda-2010-angreift-14886795.html
8)http://www.faz.net/aktuell/wirtschaft/wirtschaftspolitik/martin-schulz-und-die-agenda-2010-14893815.html
9) https://www.tagesschau.de/kommentar/kommentar-schulz-agenda-101.html
10)
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martin-schulz-horst-seehofer-kritisiert-spd-kandidaten-a-1135851.html;

tps://www.tagesschau.de/inland/agenda-2010-merkel-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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