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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펙 여성이 문제'라는 저출산 보고서는관료사회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박정희주의'의 시너지 효과
김민하 기자 | 승인 2017.02.28 16:32

며칠 전 한 ‘괴 보고서’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저출산에 관한 보건사회연구원 소속 연구위원의 인식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된 것이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위원은 인구영향평가센터장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번 일로 두 달도 안 돼 보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4일 제13차 인구포럼에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 결정 요인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제가 된 것은 “미혼 여성의 학력과 학벌수준이 미혼 남성에 비해 높아 선택결혼에 실패하고 있다”는 등의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을 고치려면 이른바 ‘스펙쌓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여 초혼연령을 낮추고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펙’이 불리하게 작용토록 하며 최신 IT기술을 활용해 배우자를 찾는데 시간이 덜 드는 방법을 찾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이 보고서가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이러한 관점에 맞추어 요약하면 저출산 문제는 여성이 ‘스펙쌓기’를 통해 자기 가치를 높이고 이와 대등하거나 더 높은 남성을 배우자로 찾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된다. 따라서 여성이 억지로 자신보다 낮은 사회적 조건을 갖춘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게 ‘상식’이 돼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상식’을 형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서술도 내놓고 있다.

이 연구위원의 보고서가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작성됐고 여성혐오적 코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혐오의 문제와 함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관성화 된 관료적 해법도 사태의 원인이 된 것을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저출산의 원인은 결혼을 하지 않는 세태에 있다는 것에는 대다수의 연구기관이나 소속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5~49세 가임 기혼여성은 692만 명으로 767만3000명이었던 2010년에 비해 감소했다. 이 중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77만8000명으로 전체의 11.2%를 점하고 있는데 5년 전인 2010년에는 48만5000명이었다. 결국 전체 인구가 줄었음에도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여성의 수가 약 60%가 증가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 22일 공개한 ‘장래인구추계 2015~2065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0대 초반 미혼 인구의 비율은 전체의 46.9%로 5년 전보다 7.2% 포인트 증가했으나 최근 4년간 혼인 건수는 2012년 32만7100건, 2013년 32만2800건, 2014년 30만5500건, 2015년 30만2900건으로 매년 감소했다. 통계청 역시 “30대 초반 인구 감소와 30대 후반 인구의 혼인율이 떨어진 것이 지난해 역대 최저 출생아 수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 '불꽃페미액션'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국책 연구기관 센터장의 출산율 하락 대책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까지는 위의 논란이 된 보고서 역시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미혼 여성들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의 대목에서 발생한다. 당연히 정공법은 결혼과 출산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의 보고서가 문제시하고 있는 미혼 여성의 ‘스펙 쌓기’는 취업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때문에 이게 문제라면 스펙을 쌓지 않아도 취업이 가능하도록 일자리를 늘리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아도 기본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야 한다.

학력수준을 기준으로 볼 때 고학력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일종의 ‘미스 매치’가 있는 건 사실이다. 출산율 하락이 기혼여성의 출산율 저하가 아니라 고학력 여성의 혼인율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건 여러 연구 결과로도 증명이 된다. 고학력 여성이 혼인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에 대해서는 흔히 ‘경력단절’ 문제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세 이상 기혼여성 가운데 경력단절 유경험자는 전체의 44%이며 이 중 58.5%가 ‘결혼’을 경력단절의 주요 사유로 꼽았다. 따라서 혼인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상에 대한 대책은 경력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 문화를 바꾸고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며 출산 및 육아휴직 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 정부 정책으로 일부 시행되는 측면이 있으나 규모가 부족해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종합해보면 이러한 것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현재의 조건을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관료들은 근본적 변화를 주장하기 보다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결혼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주력한다. 정부가 5년마다 발표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부 출산 및 양육수당의 지급 및 임대주택 입주 우선권 부여 등의 조건으로 ‘생색’을 내는 것에 효과가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온 바 있다. 일각에서는 “사람이 가축이냐”는 극단적 비아냥도 나온 바 있다.

결국 관료들의 이런 미봉적 사고와 여성혐오적 인식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가 바로 이 논란의 보고서인 셈이다. 사람을 ‘삶’으로 보는 게 아니라 억지로 결혼을 시켜 출산율을 늘리자는 식의 ‘숫자’로 보는 태도는 국민을 과학화해 중화학 공업 인프라 확충의 기회로 삼자는 식의 박정희 시대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남성 위주 관료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까지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박정희주의의 흔적을 발견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한 셈이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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