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특검 수사 연장을 거부했다. 사건의 주요 관계자들이 기소됐거나 기소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사가 이뤄져 특검의 주요 목적과 취지가 달성됐고, 국정에 안정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이러한 선택은 이미 예상된 바 있으나 후폭풍은 거세다. 당장 바른정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또 이들은 새로운 특검법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데도 합의했다. 새로운 특검법의 국회 처리에는 바른정당도 입장을 같이 했다.

물론 야권의 구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현재 상황을 ‘천재지변·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규정해 새로운 특검법을 직권상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본회의 직권상정이 아니라면 상임위를 거쳐야 하는데, 새로운 특검법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여당 간사로 버티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의 벽을 넘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야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이 ‘결단’을 하는 방법도 있으나 탄핵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대통령 대리인단 측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이 새로운 특검법을 가결시키는 데 역할을 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의회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거리로 뛰쳐나와 ‘태극기 집회’의 현장으로 갈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특검기간 연장 불승인 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27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 내에서 미세한 잡음이 나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민의당에 입당한 상태인 손학규 전 의원은 27일 성명에서 “저는 탄핵 전 국무총리의 교체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총리 임명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며 “민주당 지도부와 문 전 대표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의원은 지난 24일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손학규 총리’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는 비아냥으로 응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황교안 권한대행의 선택이 국정안정 보다는 오히려 국정의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되고 행정부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국정안정을 위한 국회의 협조가 필수다. 그런데 황교안 권한대행은 오히려 국회가 반발하고 제대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선택을 일부러 했다. 또 황교안 권한대행은 특검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했으나,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대면조사도 실시하지 못한 특검이 과연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야권이 황교안 권한대행의 선택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게 일리가 없어 보이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연장승인 여부는 재량권 남용에 관한 문제로, 황교안 대행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권영국 법률팀장은 수사가 사실상 완료되지 못한 상태인데도 황교안 권한대행이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특검법이 정한 수사 대상 14가지 중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수사가 완료됐고 특히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수사기간 연장 승인 거부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대통령에 보고하고 승인받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특검법 9조 3항을 무시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여러모로 명분이 없어 보이는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한 것은 결국 이른바 ‘태극기 집회’로 표출되는 극단적인 보수 지지층의 눈치를 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들은 그동안 박영수 특검에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그의 집 앞에서 집회를 열고 야구방망이로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만일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승인했다면 이들이 음모론적 세계관으로 구성한 배신자 리스트에 주요 언론, 국회, 검찰 및 특검, 헌법재판소에 이어 황교안 권한대행의 이름도 올라갔을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7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황교안 권한대행의 마음이 대선 출마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된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 대선 출마를 시사한 이후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10% 이상의 지지율을 점유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강경 보수층이 황교안 권한대행에 더 열광하게 된다면 다시 반등 기회를 잡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황교안 권한대행을 국회에서 탄핵하면 그는 지금까지의 행보에 ‘순교자’ 이미지를 더하게 된다. 강경 보수층은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저지하다 낙마한 황교안 권한대행을 자신들의 대표자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만일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계획하고 있다면 순전히 정치공학적 관점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순교자를 자처하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 황교안 권한대행의 특검 연장 승인 거부의 배경에 대선 출마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큰 그림’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럼에도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대통령 당선은 어려운 실정에서 본인이 직접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결단’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권행보(?)를 관료조직을 다잡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정권 말기에 대통령이 직무정지까지 된 상황에서 관료조직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장악력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적어도 ‘대권주자’라는 타이틀이 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결국 황교안 권한대행의 ‘선택’이 자유한국당 내 대권주자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거라는 점은 명확하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직접 경선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사실상의 지지활동을 통해 특정 주자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도 점쳐진다. 결국 이번 대선에 누군가는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게 황교안 권한대행일지 홍준표 경남도지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대선을 치른 이후 한국 사회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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