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톡투유>를 보다보면 세상은 이미 낙원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모두가 다른 누군가의 말을 조용히, 끝까지 들을 준비가 되었고, 전혀 모르는 생판 남의 사연에 진심으로 울어주고 또 그러다 웃는 풍경은 영락없이 인간이 잃어버렸을 낙원의 모습 바로 그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김제동의 톡투유>는 ‘힐링유’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세상일이 어떤 주제로 격랑이 일더라도 때로는 그 가쁜 숨을 딱 멈추고 스스로 분위기를 환기하게 하는 톡투유의 묘한 정지기능이 있다. 일단 멈춤. 거기에 이 토크쇼의 진정한 힘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

사람을 사로잡는 김제동의 말재간은 그 다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음인가는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청중들’ 다음이라는 것이다. 김제동 스스로 톡투유는 사회자나 패널들이 다 하고 청중들은 그저 듣고만 가는 토크쇼가 아니라, 청중들이 말하고 청중들이 대꾸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그렇게 청중이 말하고 듣는 토크쇼는 장점이 아주 많고 또 크다. 혼밥의 시대, 1인가구의 시대, 군중 속의 고독을 다시 말해야만 하는 시대. 또한 1인가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고독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더 많은 우리들. 손석희는 앵커브리핑에서 혼밥의 유행은 함께 보듬는 의미의 상실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들이 여전히 낯선 청중들 속에서 어느 틈엔가 집밥을 고봉으로 퍼서 먹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모른다고 할지라도, 험난한 세상에도 끄떡없이 버텨내는 강인한 심장의 소유자를 자랑하는 자신이 별스럽지 않은 사소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렇게 남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마법,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

그것이 전적으로 김제동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김제동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결과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제동은 이래저래 유일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인기는 많은데 출연하는 티비 프로그램은 극도로 적은, 그럼에도 인기는 결코 줄지 않는 이상한 현상. 그 비결은 ‘들어주는 것’에 있다.

일단 김제동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있지만 무조건 청중들의 편을 들어준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건 참 오래된 약속이었다. 톡투유가 시작될 때 김제동은 자신의 코디 일화를 소개하며 시청자에게, 방청객들에게 자신의 코디 같은 방송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일화의 내용은 이렇다. 연예인 김제동이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한마디 대꾸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코디가 화를 벌컥 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뒤 따지기 전에 일단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약속은 2년 동안 잘 지켜졌고, 앞으로도 톡투유가 아니더라도 잘 지켜질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김제동이 참 좋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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