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27일 최종변론기일은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통령 대리인단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조사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국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올해 초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와 정규재TV와의 인터뷰로만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내놓은 입장에서 가장 크게 강조돼있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재단 출연 부탁은 국가 발전을 위한 선의였다”, “사이비종교설은 사실이 아니다”, “밀회는 없었다”는 등의 것들이다. 그러나 사이비종교니 밀회니 하는 의혹들은 탄핵 사유가 아닐뿐더러 문제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문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수감 되면서 실체가 더 분명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직접 이런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해봐야 불리할 뿐”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그동안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출석 문제와 관련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국회나 재판관이 신문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또는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질문할 수 있으나 대통령이 답변할 의무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출석’ 결정은 이 결론 이후에 내려졌다.

‘신문 여부’가 쟁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억울하다”는 얘기를 하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신문’이 진행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답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상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답변을 거부하고 퇴정하는 것은 오히려 혐의를 인정한다거나 혐의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방어 차원에서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를 ‘대중선동’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무산된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오직 이런 식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서석구 변호사가 방청객을 향해 태극기를 펼쳐 보이려다 제지당하고 김평우 변호사가 ‘막장변론’으로 비판을 자초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징계’를 언급하고 있는데도 이들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게 김평우 변호사가 이날 일부 일간지에 낸 광고이다. 그는 여기서 “이 세계에는 수천만의 변호사가 있고, 대한민국에도 2만 명이 넘는 변호사가 있다. 그러나 혁명가는 선동가이든 아니면 막장 변호사이든 세계 역사에 기백명도 안될 것”이라면서 “저에게 변호사라는 호칭 대신에 혁명가라는 호칭이 붙여진다면, 설사 ‘사이비 선동가’, ‘노망난 늙은이’라는 전제가 붙더라도 저는 일생일대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주장했다. 대놓고 ‘법률가’로서가 아닌 ‘정치인’의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법적 권리를 대리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 결정 승복”을 언급하며 촛불시위를 정치논리에 ‘오염’됐다고 평가해온 보수언론을 머쓱하게 만드는 한 마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이 칼럼의 형태가 아니라 ‘의견광고’의 형태로 지면에 실린 것은 이들이 기성언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검찰 및 특검, 헌법재판소가 모두 한통속인데 과연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실어줄 신문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9일 ‘법조계 원로’들 역시 탄핵심판에 대한 의견을 주요 일간지에 광고로 실었는데, 주간조선에 의하면 이들은 “원래는 성명서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현 정국에선 아무리 성명을 내도 신문에 안 실어줄 게 뻔하니 차라리 광고를 내기로 한 거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법치와 애국모임’이라는 단체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에 광고를 실었는데 이 단체는 김평우 변호사가 직접 운영하는 단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과 광고는 분리돼있다는 원칙을 활용한 여론전의 형태가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26일 오후 대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오른쪽)와 정종섭(왼쪽부터)·이철우·이만희·백승주 의원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이른바 ‘태극기 시위’에 논리적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대중적 움직임에 논리적 명분이 생겼으니 보수언론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애초 이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언론 중 하나였던 조선일보는 이날 ‘최순실 국정농단 중간점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언론보도를 통해 제기된 의혹 중 사실로 드러난 것과 아닌 것을 나눴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사실로 드러난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연설문 수정, 청와대 문건 유출, 인사 개입, KD코퍼레이션 등 최순실 지인 관련 민원 해결, 삼성을 통한 정유라 씨 승마 지원 요구,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이다. 그나마도 대통령의 “선의였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등의 입장이 덧붙여있다.

‘미확인 보도’로 확인된 것은 대통령이 최순실 씨를 ‘선생님’으로 불렀다거나 ‘통일대박론’이나 ‘새누리당’ 등의 작명이 최순실 씨의 아이디어였다는 등의 다소 주변적인 것들이다. 문제의 중량감으로 보면 ‘사실로 드러난 것’의 비중이 ‘분노에 기름 부은 미확인 보도’보다 훨씬 크다. ‘미확인 보도’를 다룬 기사 제목이 지면에서는 <‘통일 대박, 최순실 아이디어’ ‘崔 아들 靑 근무’ 보도는 허위>이고 인터넷판에서는 <국민들 분노에 기름 부은 구설 9가지, 모두 거짓이었다>로 좀 더 자극적으로 변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보면 조선일보의 이런 편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분명해진다. 결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렬 보수 세력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불출석하기로 하고, 법적 권리를 대리하는 인사들이 직접 여론전에 나선 것은 결국 ‘불복’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탄핵이 인용되든 말든 나라를 두 쪽으로 쪼개놓겠다는 것이다. 탄핵 인용 직후 치러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보수세력은 탄핵에 반발하는 세력을 발판으로 재기를 도모하려들 것이다. 이 나라를 수십 년 간 좌우했던 기득권 세력이 얼마나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무책임한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극렬 보수세력의 여론전 덕에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됐던 특검 수사기간 연장도 불가능해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초월해 ‘혁명’으로 가겠다는 기득권의 행위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우리 언론은 그동안 이런 행위를 ‘친위 쿠데타’라는 어휘로 불러왔다. 과연 이러고도 이 작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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