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빈(수리고)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최다빈은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링크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126.24점을 받았다.

앞서 지난 23일 열린 쇼트 프로그램에서 61.30점을 받은 최다빈은 이날 받은 프리 스케이팅 점수를 합친 총점에서 187.54점을 기록, 2위를 차지한 중국의 리쯔쥔(총점 175.60점)을 11.94점 차로 여유 있게 제치고 1위를 확정 지었다.

3위는 175.04점을 받은 엘리자벳 투르신바에바(카자흐스탄)가 3위에 올랐고, 쇼트 프로그램 2위였던 홍고 리카(일본)는 이날 실수를 연발한 탓에 총점 161.37점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최다빈의 이번 총점은 지난 4대륙대회에서 자신이 기록한 개인 최고점(182.41점)을 5.13점을 넘어섰다. 불과 일주일 만에 자신의 ‘퍼스널 베스트’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미 실내 링크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한국 최다빈(가운데)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선수가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최다빈이 최초다.

역대 한국 선수가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페어에 출전했던 양태화-이천군 조,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 피겨 여자 싱글에 출전했던 곽민정(은퇴)이 각각 동메달을 따낸 두 차례가 전부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피겨 여제’ 김연아(은퇴)는 공교롭게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이 없다.

결국 최다빈은 적어도 아시안게임에 관한 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가 됐다. 동계 아시안게임이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열릴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최다빈을 넘어서는 선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 최다빈은 이번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이번 대회 대표 선발전을 겸해 열린 회장배 랭킹대회에서 최다빈은 5위에 그쳤다. 당시 대회에 걸린 삿포로 아시안게임 출전 티켓은 두 장. 최다빈은 시니어 무대에 나설 수 있는 만 15세 이상 선수 가운데 김나현(2위)와 박소연(4위)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그렇게 삿포로 아시안게임 출전이 무산되는가 했다. 하지만 발목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던 박소연이 끝내 아시안게임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최다빈은 극적으로 삿포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의 테스트이벤트로 강릉에서 열린 피겨 4대륙선수권대회를 치른 직후 곧바로 삿포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체력적인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23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 빙상장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최다빈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4대륙대회에서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며 5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상승세를 생각하면 최다빈에게는 더 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최다빈은 엄청난 집중력과 승부근성을 앞세워 멋지게 살려냈다.

김연아 이후 이렇다 할 시니어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던 한국 피겨에 이번 최다빈의 동계 아시안게임 우승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남자 싱글 부문에 차준환이라는 걸출한 존재가 등장했지만 김연아의 존재를 추억하는 수많은 피겨 팬들의 입장에서 김연아의 뒤를 잇는 확실한 후계자가 나오지 못하고 있던 상황은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박소연이라는 에이스급 선수가 있지만 이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처럼 부상 등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박소연과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선수의 존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칫 안방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남의 집 잔치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창을 향한 경쟁 구도의 형성은 절실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다빈의 아시안게임 제패는 한국 피겨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최다빈의 아시안게임 제패는 또 최다빈 자신을 구한 성과이기도 하다.

최다빈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 김연아의 뒤를 이을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선수로 주목 받았던 선수였다. 5세 때 언니를 따라 스케이트화를 신고 피겨에 입문한 최다빈은 11세 때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루프·살코·러츠·플립)를 모두 완성, 피겨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미 실내 링크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한국 최다빈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최다빈은 한국 선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합뉴스

최다빈은 특히 13세의 나이로 2013년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박소연(단국대), 김해진(이화여대) 등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김연아에 이어 쇼트 프로그램 2위, 최종 3위에 입상하면서 한국 여자 피겨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후 2014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차지한 2015~2016시즌에는 두 차례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연이어 동메달을 따내며 확실한 ‘포스트 김연아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최다빈은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2016~2017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2차 대회에서 7위, 6차 대회에서 9위에 랭크 됐다. 형편없는 성적도 아니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면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었다.

특히 지난 1월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무서운 동생들' 임은수(한강중), 김예림(도장중)과 동갑내기 라이벌 김나현에게 밀려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선수는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쉽고 스스로 한계를 느껴 기량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다빈은 오히려 스스로를 정비, 두 차례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냄으로써 다시 대중의 관심 안으로 들어왔다.

삿포로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최다빈은 한국 피겨뿐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터로서 자기 자신도 함께 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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