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많은 언론사가 2007년 대선 전망을 내놓았다. 언론사가 소개한 여러 가지 변수 가운데 빠지지 않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이었다. 특히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의 인터넷 선거문화가 텍스트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사용자제작콘텐츠(UCC)의 동영상이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점친 곳도 많았다.

과연 그럴까. 어제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이 전망은 틀렸다. 정치포털 서프라이즈를 보면 알 수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서프라이즈의 위력은 상당했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누리꾼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서프라이즈를 기반으로 필명을 날린 인터넷 논객도 많았다. 서프라이즈는 2004년 탄핵 국면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치포털 가운데 서프라이즈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선거법 93조 때문이었다.

▲ 경향신문 11월19일자 10면.
"대선 D-180이었던 6월22일부터 지금까지 선관위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한 글만 3000개입니다, 3000개. 악성 댓글이나 비방 게시물은 서프라이즈 구조상 자동으로 '해우소'로 빠져나갑니다. 관리자가 알아서 삭제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문제는 나름대로 합리적 근거를 갖고 대선 후보에 대해 논평하는 행위조차 막고 있다는 겁니다."

신 대표에 따르면 이미 서프라이즈에서는 많은 인터넷 논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와 단속 때문이었다. '둥근시민'이나 '파오차이' 등 몇몇 인터넷 논객들은 검찰이나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선거법 93조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려고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광고, 벽보, 사진, 문서, 인쇄물 등을 배부하거나 살포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선관위는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것도 선거법 93조 위반으로 단속하고 있다. 신문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놓기만 하는 것으로도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관위 기준이라면, 지난 11월 14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누리꾼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자녀 위장취업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 해야 한다'는 청원글도 당연히 선거법 93조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글에는 1만1700여명의 서명이 줄을 이었지만 결국 삭제되고 말았다.

누리꾼들의 불만은 폭주하고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정당한 의견개진까지 막는 것은 선관위가 선거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한 결과라는 것이 누리꾼들의 주장이다. 대선시민연대에서도 11월20일 '피해 누리꾼 번개모임'을 열기로 했다. 대선시민연대에서는 앞으로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해 선관위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법 93조 문제가 대선 직전까지 명쾌한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에서도 선거법 93조가 독소조항이란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의견개진이나 선거운동은 비용이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등 긍정적 효과가 더 많다는 사실도 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법이 '게임의 룰'의 속성을 가진다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입장이다. 어느 한쪽이 유리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불리해지는 만큼 일단은 현행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선거법 93조라는 '괴물'로 인해 누리꾼이나 선관위 모두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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