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기간 동안 두 방송사 사장의 명암이 엇갈렸다.

지난 12일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병순 KBS 사장은 <스타골든벨> 진행자인 방송인 김제동씨 교체 논란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호된 질책과 함께 ‘수신료 거부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시청자 및 네티즌들의 원성을 받아야 했다.

반면, 배석규 신임 YTN 사장은 지난 9일 오전 YTN이사회를 통해 8명 이사들의 만장일치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날 이사회는 하루 전 소집 통보가 되었으며, 간부들과 노조원 등 내부 구성원들도 모를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외부 인사 영입 필요가 없었다’는 이유로 별도의 사장 공모 절차를 밟지 않았으며, 지난 3월 YTN 사내이사로 선임되었기에 구본홍 전 사장과 달리 주주총회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이병순 사장과 배석규 사장은 여러모로 닮았다.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사장 취임한 이후, 혹은 사장 직무대행이 된 이후 밟아온 수순과 절차가 닮았다. 인사권을 통한 보도국 재편과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프로그램 손보기를 통해 ‘비판적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행동이 닮았다. 내부 구성원들의 강한 반발은 애초에 안중에 없었던 것처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다.

◇ 인사권 행사

이병순 사장, 노골적인 보복성 인사 감행

▲ 이병순
이병순 사장은 지난해 9월과 12월 인사를 통해 정부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던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한 기자와 PD,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을 지역 및 한직으로 발령하는 등 노골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다.

‘보복성 인사’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 9월17일 인사에서는 양승동 사원행동 공동대표를 TV제작본부 스페셜팀에서 심의실로, 이강택 PD를 수원연수센터로, 현상윤 PD를 시청자사업팀으로 발령했다. 또 KBS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쌈> <미디어포커스>의 팀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지역, 스포츠 중계제작팀, 방송콘텐츠팀, 뉴스제작팀으로 발령했다.

지난 1월15일에는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을 결의한 KBS 이사회를 막으려 했다는 이유로 특별인사위원회를 열어 사원행동 소속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를 파면했다. 또 성재호 기자는 해임, 이도영 경영협회장, 복진선 기자는 정직 6개월, 이상협 아나운서와 이준화 PD는 정직 3개월 등 모두 8명에 대한 징계 조치를 내렸다.

이후에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친정부적 보도를 하는데 앞장선 간부들을 승진시켰고, 주요 보직에 임명했다. 또 지난 8월, 이병순 사장이 과거 함께 일했던 이들을 팀·국장 등 주요 보직에 임명하는 등 사장 취임 이래로 특정 지역과 직종에 편중된 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배석규 사장, 보도국장 일방 교체, 앵커 교체, 지역 발령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활용하기는 배석규 사장도 마찬가지이다. 배 사장은 구본홍 전 사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사장 직무대행 역할을 하던 그 때부터 여러 차례 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것은 지난 8월10일 인사였다. 노사 협약에 따라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로 보도국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돼 임기가 보장된 보도국장을 일방적으로 교체했으며, 임장혁 당시 <돌발영상>팀장을 ‘돌발영상의 편향성’ 등을 문제 삼아 경영기획실로 대기발령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8월12일 인사를 통해선 앵커팀 소속 앵커 5명을 심의실, 정치부, 문화과학부, 해외방송팀, YTN라디오 파견 등으로 발령했다. 표면적으로 노조 활동을 한 앵커들을 일반 부서로 보낸 것으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정부 정책과 관련한 뉴스에 비판적인 코멘트를 한 앵커들을 교체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후 ‘지역취재역량 강화’를 이유로 지역 근무를 희망하지 않은 보도국 기자 5명을 별도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지역으로 발령했다. 지역 발령 이유 중 하나가 “공격적인 광고 영업”을 위한 것이었음이 추후에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KBS와 YTN의 이러한 조치들은 인사권을 가진 사장의 ‘인사권 행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사장으로서의 인사권 행사가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상식’이 배제된 인사권 행사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 프로그램 폐지 혹은 변경

이병순 사장, 시사프로그램 폐지 및 축소

이병순 사장은 취임 첫날, 시사프로그램의 폐지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이 수차례 비판해온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이 대상이었다. 그는 취임식에서 “KBS가 지난 몇 년간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가을 개편에서 기자들과 PD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을 폐지했다. 이후 <미디어비평>과 <생방송 시사360>이 신설됐으나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과거와 달리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개편’이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 이병순 사장의 KBS프로그램 재편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지난달 25일, KBS는 이사회에 <생방송 시사360> 폐지와 <아침 뉴스타임> 축소 등을 포함한 개편안을 보고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시사360>을 폐지하고, ‘급변하는 세계 정치·경제·사회 현장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생방송 세상은 지금>을 신설한다. 2TV 오전 8시에 방송되는 <아침 뉴스타임>은 뉴스시간을 20분 줄이고, 행사를 소개하는 ‘오늘의 게시판’을 신설한다. 또 <시사기획 쌈>에 대한 폐지 논란도 일고 있다.

예능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진행자였던 가수 윤도현씨에게 갑작스럽게 교체를 통보해 ‘정치적 보복’ 논란이 일었으며, 최근 <스타골든벨>의 진행자인 방송인 김제동씨 또한 “너무 오래했다”는 등의 이유로 교체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사회 현안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낸 이들로, KBS는 “시사 프로그램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정치 보복을 하려 하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배석규 사장, 돌발영상 ‘편향성’ 등 문제 삼아

▲ 배석규
배석규 사장은 <돌발영상>이 편향됐다며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배석규 사장은 경찰의 쌍용차 노조원 과잉 진압 과정을 다룬 ‘경찰을 위한 항변’(8월7일) 방송이 나간 뒤 10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돌발영상 임장혁 기자는 이 시간부로 대기발령 낸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돌발영상은 회사의 간판프로그램처럼 받아들여져 왔는데 최근 들어 공정성을 잃고 있는 불공정 사례가 있었다. 지난 금요일 쌍용자동차 경찰 진압 과정에서 한쪽 행위만 도려내, 일방적인 행위만 담아서 상당히 악의적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임장혁 기자는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기발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돌발영상이 악의적으로 제작됐다’는 발언 등에 대해 배석규 사장을 명예훼손 및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 YTN은 회사 명예실추 등을 이유로 임 기자를 정직 2개월 인사 조치했다.

현재 <돌발영상>은 지난해 10월 대규모 징계 사태 이전, <돌발영상>이 정상적으로 방송될 당시의 제작진이 모두 교체된 상태다. 당시 방송을 제작하던 임장혁 기자와 해직 통보를 받은 정유신 기자에 이어 최근까지 방송을 제작하던 정병화 기자도 경제부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돌발영상>은 지난해 12월 환경재단이 선정한 ‘2008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 2월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돌발영상>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도 이어졌다. 기존 매체를 통해 보도되지 않은 사실이 <돌발영상>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시청자 및 네티즌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배석규 사장의 ‘편향’ 발언 이 후, 현재 YTN내부에서는 “돌발영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현안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풍자한 돌발영상의 모습을 현재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청자 및 네티즌들의 반응도 시들시들하다.

한 때, 촛불이 지켜주던 KBS와 YTN

KBS와 YTN의 닮은 점은 또 있다. 한 때 촛불이 그 앞을 매운 채 지켜주려 부단히 노력했던 곳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여름, 시민들은 KBS 정연주 사장 해임을 반대하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KBS’ 등을 외치며 KBS앞을 지켰고, 지난해 여름과 겨울, 시민들은 “구본홍은 물러가라”등의 손팻말을 든 채 YTN앞을 지켰다.

이병순 사장이 취임 한 뒤 KBS는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현장에 나간 KBS 취재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봉하마을에서는 쫓겨나기도 했고, 시청 주변에서도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자, 카메라기자들은 KBS 로고를 뗀 채 취재를 해야했다. 변한 KBS의 대가는 오롯이 KBS 취재진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사장으로 선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배석규 사장의 어깨는 무거울 것이다. KBS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공정방송’의 가치를 잃은 보도에 대한 대가는 사장이 아닌 YTN 취재진이 취재 현장에서 치러야 할 것이다. 지난해 5월, 시민들이 YTN을 향해 “불 꺼라”라고 외쳤던 그 때가, 재현될 수도 있다.

물론 KBS와 YTN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른 점도 나타났다.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YTN노조와 잇따른 징계성 인사 조치와 프로그램 폐지를 대하는 KBS노동조합의 태도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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