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좌파'가 더 이상 공식적으론 멍에가 아니게 된지도 꽤 되었다. 누군가들의 구분법에 따르면, 2번이나 연속 좌파 정부가 통치했던 나라인데, 오죽하랴. 까마득한 세월 같지만, 불과 2~3년 전에 이것은 꽤 뜨거운 쟁점이다. 결국, 축약하면 '좌파'가 멍에가 아닌 상태라면,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제도 매체를 중심으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같은 고준담론이 유행했던 것은 그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던 흐름이었고, 작년 촛불과 그 이후 퇴행하는 시대와 깨어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같은 추상적 논쟁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른 도취 혹은 고준담론의 창연함이 아니라면 무기력에 가려 정말 중요한 한 가지 혹은 가장 본질적인 갈증을 해갈할 물음은 계속 유예됐다. '그렇다면 좌파는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 말이다. 사실 여전히 좌파가 뭔지, 한국사회에서 그 호명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분류와 테두리가 너무 변죽이 심해 그저 종잡을 수 없을 뿐이다.

실제로 '좌파입니다'는 표현을 여전히 꺼리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비슷한 이유에서 자신이 좌파임을 유달리 내세우는 사람들 역시 경계하게 된다. 내가 좌파인가를 되물으면, 확신은커녕 손발이 오그라든다.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여전히 그런 것이다. 다소 엄숙하고, 많이 고루하고, 때때로 고집스러운 무엇.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하고, 이행하는 실천적 삶을 살고, 살아야 한다고 강박처럼 떠들지만 정서적으로 쉽사리 화해(혹은 유대) 할 수 있겠다고 느껴지진 않는 사람들. 함께 회의를 하고 일을 도모할 순 있겠지만, 함께 여행을 가면 한 없이 지루할 것 같은. 잘 떠들지만 일을 잘 못하는. 회의를 즐기지만 왜 회의를 하는 건지는 따지지 않는. 뭐 기타 등등.

▲ 가수 강산에와 방송인 김제동이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출범기념 콘서트-파워 투 더 피플(Power to the People)'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오마이뉴스 유성호

종잡을 수 없는 좌파 논란

그러나 정작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알고 이해하고 있는 좌파와는 많이 다른 좌파들이다. 조중동이 말하는 좌파는 마르크스와는 상관없고, 좌파에 대한 그들의 혐오는 좌파에 대한 세간의 경계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색안경이다. 조중동에게 좌파는 중앙일보 이훈범 논설위원의 표현을 빌자면, "지난 정권과 친했고 딱 그만큼 현 정권과 불편한 관계인 사람들"이다 이런 근거를 들어 좌파라고 말하는 순간, 좌파라는 호명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파적 준거점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사람이건 집단이건 누구나 나름의 인식론적 틀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복잡하고 양상이 다단한 일일 경우 이를 단순화 시켜내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이기심은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20대 초반 내가 지식인을 판단하던 기준은 그가 안티 조선 선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고 갈랐다. 사고 싶은 책의 저자를 판단할 수 없으면 그것부터 따져봤다. 내게 괜찮은 지식인은 안티 조선 선언을 한 사람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모두 무가치한 학출 일 뿐이었다. 무모했지만, 간단한 기준이었다. 그 기준점을 맥락에 따라 조금은 달리 읽고, 안티 조선 선언에 동참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체질적으로 그런 것에 무관심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난 그 과정을 나의 성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 세상을 하나의 간단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미성숙이다. 여전히도 세상을 '노무현'이라고 하는 하나의 간단한 기준만으로 판단하는 조중동과 정권의 미성숙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말이지 갑갑해온다. 김제동을 퇴출시키고, 은밀하게 그를 향해 '좌파'라는 호명을 갖다 붙이고 있는 행태는 결국, 노무현 포비아(phobia, 공포의 감정이 강박으로 작용하는 이상 반응)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좌파는 악이고, 노무현(혹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은 좌파이고, 그래서 좌파는 여전히 악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국감장에서 KBS 이병순 사장을 향해, "(김제동이)좌파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에 바꿨느냐"고 물었던 것은, 설령 그녀가 원했던 대답이 '그렇지 않다'였다고 하더라도 문제이다.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강박의 단면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그가 말하는 좌파란 앞서 말한 "지난 정권과 친했고 딱 그만큼 현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뜻한다. 왜냐고, 내 기준에서 김제동은 좌파적 발언을 한 적이 없지만 그는 했단다. 노무현 추모사가 그에게 좌파적 발언이다.

결국 김제동이 아니라 MB일병 구하기

다소 뜬금없지만, 여론의 추이에 민감하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대중추수지 조선일보는 다시 김제동에게 마이크를 돌려주라고 썼다. 특히, 주목할 것은 조선일보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의 칼럼인데 그는 정권에 사회적 발언하는 사람은 모두 좌파라는 희한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단언했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먼저, 박은주 부장은 그 희한한 콤플렉스의 숙주 집단이 어디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박은주 부장의 책상 앞뒤, 옆으로 그 콤플렉스의 덩어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어찌되었건, 김제동 퇴출은 민주당을 좌파라고 생각하는 조선 중앙에게조차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 일로 굳어지고 있다. 그가 좌파가 아니라는 구명 운동까지 일고 있으니 대단한 광경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내가 알고 있는 진짜 좌파들은 이 문제에 철저히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김제동이 좌파라고 규정되는 세상에서 좌파적 정체성을 갖고 버텨내고 있는데, 그깟 문제에 떠드는 것은 의미 없다고 치부하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박은주 부장의 표현을 한 번 더 인용하자면, 그는 이럴 때마다 '대통령이 혐의를 받는 나라는 꼴이 좀 우습다'고 썼는데, 이럴 때마다 '좌파가 들먹여 지는 나라 꼴이 좀 우습다'고 여겨진다.

덧붙임>
김제동이 새로 맡게 될 프로그램 제목이 '오마이텐트'라고 한다. 더군다나 MBC다. '안 봐도 DVD' 큰일났다. MBC가 그럴 줄 알았다 싶게, 이런 좌파스러운 제목을... 장수하려거든, 프로그램 제목을 시급히 바꾸길 권유한다. <전국노래자랑> 급의 장수를 원한다면 '조갑텐트',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독립텐트' 혹은 '텐트 워치', 다 너무 유치하다면 최소한 '텐트리안' 정도는 되어야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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