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PD)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출하는 사람을 일컫는가? 모두가 맞다고 인정할 것이다. 우씨 초딩 같은 질문. 피디는 MBC <선덕여왕>과 같은 드라마도 만들고, KBS <1박2일> 같은 오락물도 연출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과 같은 교양 프로그램도 제작한다.

당근이지! 뭐야 너무나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해대? 우리 상식을 자꾸 조롱할거야? 짜증나겠지만 조금만 참고 다음 물음에도 답해 보시라. 교양 프로그램을 맡은 피디들은 KBS <환경스페셜>과 같은 자연 혹은 환경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KBS <역사스페셜>과 같은 역사 다큐멘터리도 연출할 수 있지만, MBC의 <피디수첩>과 같은 시사 다큐멘터리도 맡을 수 있나?

마지막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는 ‘물론이지’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런데 ‘음, 생각 좀 해보고…’도 아닌, ‘이젠 더 이상 안 되지!’라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드라마도 되고, 오락도 되고, 여행 다큐멘터리도 되고, 과학 다큐멘터리도 되지만, 시사 다큐멘터리는 안 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피디는 더 이상 시사 다큐멘터리, 흔히 말해서 피디저널리즘을 제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왜냐고? PD들은 저널리스트로서 한 마디로 기본이 안 되어 있고, 피디저널리즘은 데스크의 게이트키핑이 이루어지지 않는 '개판'의 작업 결과이며, 그래서 이념적 편견이나 부정확한 보도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나쁜 프로그램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사회적 흉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흉기?

그러하니 김보슬 PD에게 수조원의 사회적 손실에 대한 책임을 따지고, 그녀가 맡았던 <피디수첩>의 악의적 조작 여부를 사법 조사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참에 반사회적이고 불량한 피디저널리즘 자체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프로페셔널로서의 훈련이 잘 된 기자들이 전담해야 하고, 보도는 데스크의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보도(제작)국에서만 맡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정한 보도, 사회적으로 선한 보도,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보장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게 사회적 흉기를 빼앗는 길이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안전을 보호 하는 길이다. 요컨대 일개 피디나 <피디수첩> 같은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징계 차원을 넘어, 피디저널리즘 자체를 구조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PD저널리즘은 꼴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너무 많은 유사 프로그램들이 같은 소리를 해대는 게 좋지 않으니 줄이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지난 달 방문진의 김광동 이사는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 <뉴스후> 등의 시사프로그램이 동일한 주제를 같은 취지로 다루는 경우가 많으므로 효율성 차원에서 프로그램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며칠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도 비슷하게 “<MBC스페셜>, <시사매거진 2580>, <뉴스후>, <피디수첩> 등 PD저널리즘에 따른 프로그램이 4개나 있는데 이렇게 따로 있을 필요가 있냐”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누가 더 연역적인가?

그 질문에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이 분리돼 있어 소재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엄기영 사장이 두 부서에 대한 통․폐합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답변했단다. 소재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서 통폐합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프로그램 통폐합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부서가 없어지고 어떤 프로그램이 사라질지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게이트키핑이 엄중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시사교양국이 날아가는 게 맞고, 데스크 기능이 부족한 피디저널리즘 프로그램이 줄어드는 게 옳다. “취재방법이라든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피디들이 떠나라. 그렇게 하는 게 ‘공정성 확보’의 길이고, 엠비씨와 엄기영 사장은 빨리 ‘개선의 의지’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정리 해보자. 피디들은 저널리스트로서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데스크의 게이트키핑도 안 되니, 나오는 시사보도물이 얼마나 질 낮고 엉터리이겠는가. 소재나 내용도 전문 기자들이 만드는 것과 많이 겹치니, 이제 피디들이 만드는 똑같고 저질이며 위험한 시사프로그램의 막을 내리자. 그게 위험 관리, 효율성 증진의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다. 소재가 겹치는 드라마, 내용이 뻔한 오락물에 대해서는 트집을 잡지 않는 게 희한하다. 오직 피디들의 피디저널리즘만이 문제다. 김우룡 이사장은 피디저널리즘이 “흔히 연역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단다. ‘연역적’이라는 말을 ‘결론을 이미 전제 속에 포함하고 있는 추리방법’의 의미로 파악한다면, 그의 논리 자체가 철저하게 연역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피디들에 비해 기자들은 프로페셔널로서의 자질이 더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는 과연 타당한가? 사실 보도라는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저널리즘을 단순 사실 보도가 아닌 심층 진실 취재로 정확하게 이해할 때, 이 땅의 방송기자들은 대체 얼마나 제대로 교육이 되어 있는가?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는 평생을 기자로 사는 게 명예라고 하던데, 이 나라의 기자들은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기에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재벌의 이사로 변신하는가? 다음 선거에서는 KBS나 MBC의 또 어떤 기자들이 권력에 대한 욕망, 권력과의 근친관계를 드러낼 것인가? 데스크의 게이트키핑이 얼마나 철저했기에 KBS의 <9시뉴스>처럼 통신사 기금요구 ‘의혹’이 국정감사에서의 여야간 ‘논란’으로 축소되고 마는가?

▲ 검찰이 MBC < PD수첩 >의 광우병 프로그램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저지 및 공영방송사수를 위한 촛불문화제' ⓒ 오마이뉴스 유성호

누가 더 위험한가?

오해마시라. 방송사 기자 모두를 욕할 생각이 없다. 피디저널리즘에 대해서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왜 없겠는가? 다만 기자보도는 선이고 피디저널리즘은 악이라는 그들의 이분법적 무리한 전제를 비판코자 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디저널리즘을 없애거나 통폐합해야 한다는 광폭한 결론을 시비하는 것이다. 그들의 등식에 학자, 시청자, 활동가로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굳이 이분법을 고수한다면, 표피에서 알랑거리는 (객관성을 빙자한) 보도가 나쁘고 심층을 파고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탐사저널리즘이 아름답다. 전자는 기자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오직 소수의 용기있는 저널리스트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서비스가 민주정치에 훨씬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저널리즘을 폐쇄코자 하는 그들의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의 의사를 표명한다. 진실 대신에 사실만을 강조하고 심층 대신에 표층을 선호하는 이들이 뭘 원하는지는 너무나 뻔하다. 위험한 흉기로부터 일반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굽쇼? 관두라. 진실의 주장을 사회적 공론장으로부터 차단하고 진지한 저널리즘의 장 자체를 퍠쇄코자 하는 당신들의 의도가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공적 이성 활용의 공간을 폐쇄하는 게 좋다는 말 만큼 이 시대의 흉흉한 기운을 표현하는 모순어법도 없다. 손석희, 김제동과 같은 의식 있는 진행자의 퇴출과 함께, 심층․비판적 저널리즘의 적출 작업이 시작되었다. 표피성의 외설사회, 일방성의 선전체제를 위해? 비상사태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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